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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권아【卷阿】권아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인데, 내용은 곧 소강공(召康公)이 성왕(成王)에게 태평 성대라 하여 방심하지 말고 현인양사(賢人良士)를 널리 찾아 등용해야 한다고 경계한 것이다.

권영만종등영모【顴影漫從燈影摹】소식(蘇軾)의 전신(傳神)에 “顧虎頭云 傳形寫影 都在阿睹中 其次 在顴頰" 이라 했다.

권외기비【券外期費】기비는 재물을 말하며 권외(券外)는 밖을 밝힌다는 뜻으로 장자(莊子)의 “안을 밝히는 자는 무명을 행하고 밖을 밝히는 자는 기비를 뜻한다.[券內者行乎無名 券外者志乎期費]"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권유【倦遊】사기(史記)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에 “장경(長卿 사마상여의 자)이 노는 데 게으르다.[倦游]" 한 고사에서 온 말인데, 그 주에 “이는 벼슬하기를 싫어한 것이다.” 하였다.

권응인【權應仁】조선조 선조 때 문인. 송대(宋代)의 시풍(詩風)이 유행하던 문단(文壇)에 만당(晩唐)의 시(詩)를 받아들여 큰 전환을 가져왔으며, 시평(詩評)에도 훌륭한 업적을 남겼음.

권장음【捲帳飮】장막(帳幕)을 걷어 올리고 술을 마신다는 뜻으로, 공회(公會) 때에 장막을 연접하여 있는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관원이 장막을 걷어 올리고 서로 술을 마시던 일을 이르는 말.

권정보【權定甫】정보는 권우(權宇)의 자이다.

권정오【權靜吾】정오(靜吾)는 권첩(權怗)의 자(字)이다.

권조기래시응양【捲釣起來時鷹揚】강태공(姜太公)이 뒤에 주(周)에 벼슬하여 은(殷)나라를 칠 때에 목야(牧野)싸움에서 매처럼 날쳤다.

권조비【倦鳥飛】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새도 날다가 지치면 돌아올 줄 알도다.[鳥倦飛而知還]”라는 말이 있다.

권조지환【倦鳥知還】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무심한 구름은 메를 나아가고, 새는 날다가 지쳐 돌아올 줄 알았네.”라는 귀절이 있는데, 이것은 자신이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데에 비유하였다.

권토중래【捲土重來】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 한 번 패한 자가 힘을 돌이켜 전력을 다하여 다시 쳐들어옴. 한 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권형【權衡】관리 임명하는 권한.

권형【權衡】저울의 추와 저울대.

권회【卷懷】무도(無道)한 세상을 만나면 미련없이 떠나 자취를 감춘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거백옥(籧伯玉)은 군자로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아가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 속에다 감추어 두는구나.[邦無道則可卷而懷之]”라고 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궐【蟨】궐(蟨)은 전설상의 비견수(比肩獸)의 별칭인데, 그는 앞발은 쥐의 발 같고 뒷발은 토끼의 다리와 같아서 잘 달리지 못하므로, 항상 공공거허(邛邛岠虛)와 나란히 다니면서 공공거허에게 감초(甘草)를 먹여 주어, 혹 위기를 만나면 공공거허가 그를 등에 업고 도망친다고 한다.

궐거【蟨蚷】궐(蟨)이란 북방에 있은 쥐같은 짐승이라 한다. 그 짐승은 거(蚷)라는 짐승과 짝이 되어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한다.

궐궐【橛橛】의연한 자세로 요동하지 않는 모양.

궐내무역【闕內貿易】조선시대에 중국으로 사행(使行)갈 때에 대궐에서 직접 역관을 불러 들여 은과 인삼을 적당히 주어 중국 물건을 사들이게 하는 것으로, 왕의 위엄에 눌려서 사신도 금지시키지 못하고 어사도 적발하지 못하였음.

궐리【闕里】궐리는 공자가 태어난 마을로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성 안에 있는데, 뒤에 이곳에 궐리사(闕里祠)를 세웠다. 수사(洙泗) 사이에 있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곧 공자를 가리킴.

궐리마장【闕里摩墻】궐리는 공자(孔子)가 탄생한 옛 마을 이름으로, 거기서 공자가 제자들을 받아들여 가르쳤는데, 손님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궐리언【闕里言】궐리는 공자(孔子)가 살던 마을인데, 지금 산동성 곡부현(曲阜縣) 성중에 있다. 궐리의 말씀은 유교의 경전(經典).

궐리현가【闕里絃歌】궐리는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지명(地名)으로 공자(孔子)가 살던 곳이며, 현가는 거문고ㆍ비파 등으로 시를 읊어 노래함을 말한다. 공자는 일찍이 궐리의 행수(杏樹) 아래에서 제자들에게 예악(禮樂)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이것을 ‘행단(杏壇)’이라 하며, 이것이 유래되어 노(魯) 나라에는 현가의 소리가 오래도록 끊기지 않았다 한다. 《史記 卷四十七 孔子世家, 孔子家語, 漢書 卷八十八 儒林傳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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