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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기려【氣厲】유행성 급성 전염병.

기려객【騎驢客】당(唐) 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을 말함. 소식(蘇軾)의 증사진하충수재시(贈寫眞何充秀才詩)에 “그대는 또 못 보았나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을 눈썹 찡그리고 어깨 솟구치며 시를 읊었네[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卷十二》

기려객【騎驢客】시상(詩想)에 빠져드는 시인을 말한다. 당(唐) 나라 가도(賈島)가 시상에 몰두하며 말을 타고 가다가 경조윤(京兆尹)의 행차를 피하지 않아 붙잡혀 들어갔던 고사가 있다. 《新唐書 賈島傳》

기려화산【騎驢華山】화산처사(華山處士) 진박(陳博)이 일찍이 흰 나귀를 타고 변중(汴中)으로 들어가려다가 송 태조(宋太祖)가 등극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웃고 나귀에서 떨어지며 말하기를, “천하가 이제야 정(定)해졌군.” 하였다.

기련【祁連】기련은 흉노의 말로 하늘[天]이라는 뜻이다.

기련【祈連】북사(北史) 제 문선기(齊文宣紀)에 “황제가 유유(蠕蠕)를 친히 토벌함에, 제군(諸軍)이 대거 기련지(祈連池)에 집결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기련총【祈連塚】기련산의 기(祈) 자는 보통 기(祁)로 쓴다. 한(漢) 나라의 곽거병(霍去病)이 흉노(匈奴)가 천산(天山)이라고 부르는 기련산까지 진출했었는데, 그가 죽자 황제가 애도하면서 그의 봉분을 기련산의 모양을 본떠 만들도록 했으므로, 이후 장군의 무덤을 기련총(祁連塚)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史記 卷111》

기로망양【歧路亡羊】열자(列子) 설부(說符)에 양자(楊子)의 이웃사람이 염소를 잊어버려 그의 종이 찾으러갔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말하기를 “갈림길 가운데 또 갈림길이 있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돌아왔다.” 한 데서 나온 것이다.

기로소【耆老所】조선에서는 태조(太祖) 때부터 70세 이상의 문관 출신으로 벼슬이 정2품 정경(正卿) 이상인 사람들을 기로소 당상(耆老所堂上)이라 하여 우대하였다. 《燃藜室記述 別集 卷6 官職典故 耆社》

기뢰【夔罍】기봉뢰(夔鳳罍)로서 일족(一足)의 봉(鳳)을 기봉이라 하는데 고대의 준뢰(樽罍)에는 그 무늬로 꾸몄음.

기룡【夔龍】요순(堯舜) 시절의 어진 신하들. 순(舜) 임금의 악관(樂官)이었던 기(夔)와 간관(諫官)이었던 용(龍)의 병칭으로, 임금을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의 반열을 뜻한다. 당시 은자였던 소보(巢父)ㆍ허유(許由)와는 대조적이다.

기리【機利】기리는 기회를 타서 얻는 이익을 말한다.

기리거【綺里居】기리계는 한(漢) 나라 때 은사(隱士)인 상산사호(商山四皓)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본디 기리(綺里)에 살았었기 때문에 기리계라 한다. 곧 은거하는 사람의 집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기리계【綺里季】성이 기리(綺里)요 이름이 계(季)라는 사람. 진(秦) 나라 말엽의 은사(隱士)인 상산 사호(商山四皓)의 한 사람. 한 고조(漢高祖)가 태자를 폐하려 할 때 여후(呂后)가 장량(張良)의 말을 듣고 상산사호를 불러와 태자를 보좌하게 하였는데, 고조가 그들이 태자를 모시고 있는 것을 보고 “우익이 이미 형성되었다.” 하고, 마음을 바꿨다 한다. 나머지는 동원공(東園公)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 선생(甪里先生)이다.

기리단금【其利斷金】날카롭기가 쇠를 자를 정도임. 절친한 친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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