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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약완【弱腕】연약한 어린아이의 팔뚝.

약우전해【弱羽塡海】능력은 없으면서 큰 꿈을 가지고 있음을 비유한 말.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東海)에 빠져 죽었는데, 그 넋이 정위(精衛)로 새로 화생하여 항상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날라다가 동해를 메웠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먹이가 됨. 치열하고 냉혹한 생존 경쟁의 세계에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법칙

약이【若暆】약목은 서쪽 맨 끝의 해 지는 곳에 있다는 나무 이름으로, 지는 해를 가리킨 말이다.

약장【藥匠】화포(火砲)ㆍ화약(火藥)을 다루는 장인(匠人). 뒤에 파진군(破陳軍)으로 개칭하였다.

약포【藥圃】약초를 심어 기르는 밭.

약하춘【若下春】좋은 술 이름.

약호【藥壺】선경(仙境)이나 승경(勝境)을 가리키는 호천(壺天)을 말한다. 동한(東漢) 때 비장방(費長房) 여남(汝南)의 시장을 관리하는 시연(市櫞)의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시중(市中)에서 약을 파는 한 노옹(老翁)이 병 하나를 가게 머리에 두고 있다가, 저자가 파하면 문득 병 속으로 들어갔었다. 시중의 사람들은 보지 못하나 오직 장방(長房)이 누상(樓上)에서 보고 이상하게 여겨서, 찾아가서 두 번 절하고 술과 안주를 바치었다. 노옹은 장방의 뜻을 알고 말하기를, “내일 다시 오너라.” 하였다. 장방이 아침에 갔더니 노옹이 데리고 병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는 옥당(玉堂)이 굉장히 화려하고 맛있는 술과 좋은 안주가 가득 차 있었다. 실컷 마시고 나와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후일 노옹이 누상에 와서 장방을 보고, “나는 신선으로서 허물로 견책을 받아 인간에 왔더니, 이제는 기한이 다 되어 갈 터이니 따라가겠는가.” 하였다. 장방은 따라가서 깊은 산중에서 수도(修道)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後漢書 卷82 方術傳下 費長房》

약호선【藥壺仙】약호(藥壺)란 약을 파는 호공(壺公). 호공이란 신선이 저잣거리에서 약을 팔고 있었는데, 모두 그저 평범한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루는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호공이 천정에 걸어둔 호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비범한 인물인 줄 알고 매일같이 정성껏 그를 시봉하였더니, 하루는 호공이 그를 데리고 호로 속으로 들어갔는데, 호로 속은 완전히 별천지로 해와 달이 있고 선궁(仙宮)이 있었다 한다. 《神仙傳 壺公》

약화【若華】약목(若木)의 꽃. 약목은 곤륜산(崑崙山) 서극(西極)에 있다는 신목(神木)의 이름으로 그 나무에 붉은 꽃이 피어 그 빛이 대지를 비춘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 초사(楚辭) 천문(天問)에 “해가 뜨기도 전에 약화는 어찌 그리 빛나는고.[羲和之未揚 若華何光]”하였다.

양【量】많고 적음을 다는 기구.

양【梁】蕭衍(소연)이 세운 중국 南朝의 제3왕조(502~557). 蕭梁(소량)이라고도 한다. 南齊 말 내란이 일어나자 雍州刺史(옹주자사) 소연은 501년 建康(건강 南京)을 공략, 폭군 東昏侯(동혼후)를 퇴위시키고 南康王(남강왕)을 和帝(화제)로 추대하여 스스로는 相國(상국)이 되었으나, 502년 화제를 禪讓받아 제위[武帝]에 오르고 국호를 양이라 하였다. 무제가 다스린 48년간의 전반은 내정의 정비에 힘썼고, 후반에는 무제 스스로가 불교신앙에 열중하여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내정의 질서는 흩어졌다. 548년 北朝의 東魏에서 망명한 侯景(후경)이 건강에서 반란을 일으켜 궁중에 유폐된 무제는 병사하고, 2대 簡文帝(간문제)도 피살되었다. 후경의 난은 王僧弁(왕승변)ㆍ陳覇先(진패선)에 의해 평정되었으나, 그 뒤 이들 사이에 쟁투가 벌어져 이에 따라 황제의 폐립이 빈번하였다. 554년 4대 元帝가 西魏의 공격을 받고 죽자 2대 간문제의 아들인 岳陽王(악양왕) 蕭樽(소찰)은 서위의 보호 아래 괴뢰정권인 後梁을 세웠다. 한편 앞서 후경의 난을 평정한 진패선은 555년 閔帝(민제)와 敬帝(경제)를 잇달아 5, 6대 황제로 옹립하여 양나라의 법통을 이었으나, 557년 경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陳나라를 세워 제위에 오르고 양나라는 멸하였다.

양【瀼】양은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물 이름인데, 그 지방 사람들은 산골짜기에서 강으로 흘러내려 가는 물을 양이라고 하는바, 두보(杜甫)가 일찍이 기주(夔州)에서 살 적에 양수의 동쪽과 서쪽 등으로 여러 차례 이사하며 살았던 데서 온 말이다. 두보의 기주가(夔州歌)에 “양동과 양서에는 일만 호의 집이요 강북과 강남에는 봄과 겨울의 꽃이로다[瀼東瀼西一萬家 江北江南春冬花]”하였다. 《杜少陵集 卷十五》

양【揚】양은 후한 성도인(成都人) 양웅(揚雄)이다.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고 성제(成帝) 때에 황제가 불러서 감천(甘泉), 하동(河東), 장양(長楊) 등의 부를 올렸다. 《漢書 卷八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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