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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여자구【呂子久】자구는 여이징(呂爾徵)의 자(字)로, 호는 동강(東江)이다. 북백은 관북(關北)의 방백, 즉 함경도 관찰사를 가리킨다.

여자동포【與子同袍】자네와 두루마기를 같이 입겠네. 친구 사이에 서로 허물없이 무관하여 하는 말

여자시아조【餘子是兒曹】후한서(後漢書) 녜형전(禰衡傳)의 “큰 아이는 공문거(孔文擧)이고 작은 아이는 양덕조(楊德祖)이며 그 나머지 사람들은 녹록하여 거론할 가치도 없다.”에서 나온 것으로, 세속의 하찮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자여량【如茨如梁】곡식이 무성한 모양.

여자청【女子靑】동청(冬靑), 즉 감탕나무인데, 겨울에도 푸르다 하여 여자의 정절에 비유하여 여정(女貞)이라고도 한다.

여장【女墻】성 위에 쌓은 들쭉날쭉한 담을 말한다.

여재주【驢載酒】명(明) 나라 조학(曹學)이 날마다 돈과 호로병을 묶어 나귀등에 실어서 성 안으로 들여보내면 사람들이 조학의 나귀임을 알고 돈을 받고 호로병에 술을 담아 보냈다 한다.

여전【臚傳】전상(殿上)에서 과거 급제자(科擧及第者)의 이름을 호창(呼唱)하면 계하(階下)의 위사(衛士)들이 일제히 그 소리를 전달하던 것을 말한다.

여절【女節】여절은 황제(皇帝)의 정비(正妃)로 황아(皇娥)라고도 하는데, 밤에 별에서 무지개 같은 기운이 내려오는 꿈을 꾸고 지(摯)를 낳았다 한다.

여정【呂政】여정은 진시황(秦始皇) 영정(贏政)으로, 그가 실제로 여불위(呂不韋)의 소생이기 때문에 경멸하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여정【荔挺】여정은 향초(香草)의 이름.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중동(仲冬)의 달에 여정이 싹난다" 하였다.

여정【犁庭】뜰을 갈아서 밭으로 만든다는 뜻으로, 즉 흉노를 멸망시킴을 비유한 말이다. 《漢書 匈奴傳》

여정【餘丁】군역(軍役)에 종사하는 정년자(丁年者) 이외의 장정(壯丁)들을 말함.

여조겸【呂祖謙】여동래는 송(宋) 나라 사람. 호는 동래(東萊). 주희(朱熹)가 일찍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매미 소리가 더욱 맑아진지라,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공의 높은 풍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三十三》

여좌【閭左】의무려산(醫巫閭山)의 동쪽 지역. 의무려산은 요령성(遼寧省) 북진현(北鎭縣) 서쪽에 있는 큰 산으로 음산산맥(陰山山脈)의 지맥(支脈)이다.

여좌【閭左】진(秦) 나라 때에 부역(賦役) 등을 면제받고 이문(里門)의 좌측에 살던 빈약한 민가(民家)를 말하는데, 진 시황은 이 빈약한 민가에서까지 수졸을 징발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여주【驪珠】검은 용(龍)의 턱 밑에 있다는 보주(寶珠)를 이르는데, 이것은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므로, 전하여 뛰어난 시문(詩文)을 비유한 말이다.

여지【荔枝】과수(果樹)의 이름인데, 열매가 매우 맛이 좋다고 한다.

여지【荔支】과일의 이름. 중국 복건(福建)ㆍ광동(廣東)ㆍ사천(四川) 등지에서 생산되는 과일로 살은 희고 맛은 달고 즙(汁)이 많으며, 모양은 용안(龍眼)의 열매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당 현종의 비(妃)인 양귀비(楊貴妃)가 이를 매우 즐겨 먹었다고 한다. 당서(唐書)에 “양귀비(楊貴妃)가 여지를 좋아했는데, 반드시 싱싱한 것으로 가져와야만 했다. 그러므로 연도(沿道)에 역마(驛馬)를 놓아 수천 리의 거리를 전송(傳送)해 와도 그 맛이 변치 않은 채경도(京都)에 도착하곤 했다.” 하였다. 두목(杜牧)의 시(詩)에 “말발굽에 이는 티끌 귀비가 좋아하는데, 여지가 올라온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一騎紅 塵妃子笑 無人知是荔支來]”하였다.

여지금대【荔支金帶】띠의 장식물을 금색(金色)에 진홍점(眞紅點)을 찍은 것으로 마치 여지(荔支)의 피황실홍(皮黃實紅)과 같기 때문에 이렇게 일컫는데, 2품관 및 정3품관의 공복(公服) 차림에 띠는 띠이다.

여지여위【如脂如韋】기름 같고 가죽같이 부드럽다.

여지지【輿地誌】감은 천도(天道), 여는 지도(地道)의 뜻으로 천문 지리에 관한 기록물을 말하는데, 보통 지리서의 의미로 이해된다.

여지출처【如知出處】세상에 쓰일 수 있을 때에는 나가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들어와서 사는 것을 말한다.

여진【呂秦】진 시황(秦始皇)을 가리킴. 일찍이 진 장양왕(秦莊襄王)이 조(趙) 나라에 볼모로 가 있을 적에 양적(陽翟)의 대고(大賈) 여불위(呂不韋)가 자기 아이를 임신한 총희(寵姬)를 장양왕에게 바쳤던 바, 그가 낳은 아이가 곧 뒤에 진 시황이 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 《史記 卷八十五》

여진여퇴【旅進旅退】특별한 주체성 없이 대중과 진퇴를 함께 하는 것. 《國語》 越語上의 “나는 필부의 용맹은 원치 않고 대중과 진퇴를 함께 하기를 원한다.[吾不欲匹夫之勇也 欲其旅進旅退]" 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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