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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영천【潁川】물 이름. 여기서 고대 중국의 고사(高士) 허유(許由)가, 요(堯)에게서 천하를 맡아 달라는 권유를 받고,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 하여 귀를 씻었다 한다. 《高士傳》

영천【潁川】한나라 조광한(趙廣漢)이라는 사람이 영천(穎川) 태수로서 정치를 잘하였으므로 명성이 높아졌다.

영천금【令千金】남의 딸을 일컬음.

영천대성【穎川大姓】한무제(漢武帝) 때에 관부(灌夫)의 족속(族屬)들이 영천(穎川)에 살면서 관부의 세력을 빙자하고 호세(豪勢)와 횡포를 부렸다.

영천수【榮川守】일찍이 영천 군수(榮川郡守)를 지냈던 여동근(呂東根)을 이르며, 그의 호가 곧 청탄(靑灘)이다.

영천옹【潁川翁】요(堯) 임금이 제위(帝位)를 맡기려 하자 허유가 이를 거절하고서 귀를 씻었고, 이 말을 들은 소부가 또 소에게 더러운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다고 하여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서 물을 먹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참고로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상산에는 사호(四皓)가 있고, 영천에는 소부와 허유가 있었다오.[商山有黃綺 潁川有巢許]”라는 구절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2 讀史五首》

영천태수【潁川太守】한(漢) 나라 황패(黃覇)를 말하는데, 훌륭한 정사를 펼쳐 “黃霸政殊”라는 몽구(蒙求)의 표제가 전해 온다. 《漢書 卷89》

영천훈업【潁川勳業】한(漢) 나라 때 황패(黃覇)가 영천 태수(潁川太守)로 있으면서 크게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므로 높이가 한 길이나 되는 수레 덮개를 특별히 하사받는 등 융숭한 포장(褒獎)을 입은 데서 유래한다. 《漢書 循吏傳 黃覇傳》

영철야【靈撤夜】부모의 상장(喪葬)에 가재를 기울여 유밀과(油蜜果)를 많이 장만하고 손님을 모아 풍악을 벌여 시신을 즐겁게 하는 풍습.

영철유조【靈徹有嘲】불가(佛家) 내부의 비난을 말한다. 영철(靈徹)은 당 나라 때의 시승(詩僧)으로, 늘 교연(皎然)과 교유하면서 포길(包佶), 이서(李紓)의 지우를 얻어 장안에 이름을 떨쳤는데, 승도(僧徒)가 질시하여 참소한 나머지 정주(汀州)로 귀양간 적이 있다. 《宋高僧傳 卷15》

영첩【靈輒】춘추(春秋) 시대 때 진(晉) 조돈(趙盾)이 예상(翳桑)에 사냥갔다가 영첩(靈輒)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밥먹여 살렸더니, 뒤에 영공(靈公)이 갑사(甲士)를 매복시켜 돈을 죽이려 하므로 첩이 마침 공의 무사가 되었다가 창을 거꾸로 하고 막아 돈이 죽음을 면하였다.

영첩기【靈輒飢】영첩은 춘추 시대 진(晉) 나라 사람인데, 조선자(趙宣子)가 수산(首山)에 사냥하러 나갔다가 영첩이 배가 고파 기진맥진한 것을 보고 밥을 주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左氏傳 宣公 二年》

영첩지은【靈輒知恩】영첩은 춘추 시대 진(晉) 나라 사람이다. 진 나라 조돈(趙盾)이 예상에서 사냥을 할 적에, 굶주림에 지친 영첩을 보고 먹을 것을 주어 구해주었는데, 뒤에 영공(靈公)이 복병(伏兵)을 시켜 조돈을 죽이려 하자, 영첩이 이때 마침 영공의 무사(武士)가 되어 창뿌리를 거꾸로 돌려서 도리어 영공의 군사를 방어하여 조돈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조돈이 그 이유를 묻자, 말하기를 “나는 예상에서 굶주리던 사람이다.” 하므로, 이름과 주거(住居)를 물으니 대답하지 않고 가버렸다는 고사이다. 《左傳 宣公 二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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