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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백륜【伯倫】진(晉) 나라 패국(沛國) 사람인 유령(劉伶)의 자. 완적(阮籍)ㆍ혜강(嵇康) 등과 사이좋게 지내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데, 예법을 무시하고 호방하게 술을 즐겨 마셔 현실을 도피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인용된다. 일찍이 주덕송(酒德頌)을 지었다. 《晉書 卷四十九 劉伶傳》

백륜건【白綸巾】흰 베로 만든 두건인데, 옛날 은자(隱者)나 풍류인들이 썼다고 한다. 진(晉) 나라 도연명(陶淵明)이 백륜건을 쓰고 지냈다.

백륜송【伯倫頌】진(晉) 나라 때의 명사(名士)인 유령(劉伶)이 지은 주덕송(酒德頌)을 말한다. 백륜은 유령의 자이다.

백리【百里】백리혜(百里惠). 춘추 시대 진목공의 대부.

백리【百里】지방 장관의 별칭. 한 현(縣)이 사방 1백리이므로 현령(縣令)ㆍ현감(縣監)을 말한다.

백리부미【百里負米】가난하게 살면서 부모에게 효양(孝養)하는 것을 비유한 말.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일찍이 두 어버이를 섬길 적에 집이 가난하여 항상 여곽(藜藿)의 열매만 먹고살았으므로, 그가 어버이를 위하여 백 리 밖에서 쌀을 지고 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孔子家語 致思》

백리음서【百里音書】가까운 지역에서 보내 온 소식을 말한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백리의 음서가 어찌하여 이토록 늦게야 도착했노, 늦은 봄에 지은 시를 늦가을에야 받아 봤소.[百里音書何太遲 暮秋把得暮春詩]”라는 구절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15 渭村酬李二十見寄》

백리인성용철상【百里仁聲舂輟相】백리해는 우(虞) 나라의 현신이었는데, 우 나라 임금을 버리고 진(秦) 나라로 가서 목공(穆公)을 섬김으로써 오고대부(五羖大夫)가 되었다. 조량(趙良)이 상앙(商鞅)에게 이르기를, “오고대부(五羖大夫)가 죽고 나자, 진(秦) 나라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고 방아를 찧던 자들이 절구질을 하지 않았다.” 하였다. 《史記 卷六十八 商君列傳》

백리잠우구【百里潛牛口】우(虞)의 대부(大夫)백리해(百里奚)가 초(楚)나라 사람에게 붙잡혀 있을 때 진 목공(秦穆公)이 그의 어짐을 듣고 자기 나라 정사를 그에게 맡기기 위하여 염소 가죽 다섯 장으로 그의 죄값을 물고 데려와 국정을 맡겼는데, 그 말이 와전되어 백리해 자신이 진 목공을 만나기 위하여 염소 가죽 다섯 장에 몸을 팔아 남의 소 먹이 노릇을 하였다고 함. 《孟子 萬章上》

백리재【百里才】지방 장관 또는 현령(縣令)의 별칭이다. 유비(劉備)가 처음에 방통(龐統)을 뇌양(耒陽)의 현령으로 발령하였는데, 오(吳) 나라의 노숙(魯肅)이 이 소문을 듣고 편지를 보내기를 “그는 백리재(百里才)가 아니니 조정에 불러와서 천리마(千里馬)의 재질을 펼치도록 해야 한다.”고 한 고사가 있다. 《三國志 蜀志 龐統傳》

백리해【百里奚】백리해는 춘추 시대 우(虞) 나라의 현신(賢臣)으로 불우하게 떠돌아다니다가 잘못 초(楚) 나라에 억류되었는데, 이때 진 목공(秦穆公)이 그의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는 암양[羖] 가죽 다섯 벌을 초 나라 사람에게 주고 억류된 백리해를 데려와 정승으로 삼았다. 그래서 백리해를 오고대부(五羖大夫)라고도 한다. 《史記 秦紀》

백리후【百里侯】백리는 공후(公侯)의 나라로서 곧 한 고을의 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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