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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장교비희차비노【長蛟贔屭佽飛怒】춘추 시대 초(楚) 나라 검사(劍士) 차비(佽飛)가 강을 건널 때 두 마리의 교룡이 배를 습격해 오자, 보검을 빼어 들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교룡의 머리를 베었던 고사이다. 《淮南子 道應訓》

장구령【장九齡】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재상이며 뛰어난 문장이었음. 자는 자수(子壽). 저서에는 곡강집(曲江集)이 있음.

장구사운시【長句四韻詩】7자를 1구로 하여 8구로 1편을 이루고, 제 2ㆍ4ㆍ6ㆍ8구의 말미에 운자(韻字)를 쓴 시체(詩體), 칠언율시(七言律詩)의 한 변격(變格).

장구학【章句學】학문이 훌륭하지 못하다는 겸사. 장(章)과 구(句)의 해석에만 치우쳐 전체의 대의(大義)에는 통하지 않는 학문을 말한다.

장국【長鞠】오랫동안 고생하다.

장군경병【將軍競病】민첩한 재질을 발휘하여 멋진 시를 순식간에 지어내는 것을 말한다. 남조(南朝) 양(梁)의 장군 조경종(曹景宗)이 북위(北魏) 군대를 대파하고 개선한 뒤 열린 연회에서, 운자(韻字)를 서로 나누어 연구(聯句)로 시를 지을 적에, 마지막 남은 운자인 ‘경(競)’과 ‘병(病)’ 두 글자를 가지고 한번 지어보겠다고 자청하면서, “떠날 때는 아녀자들 슬퍼했는데, 돌아오니 풍악 소리 다투어 울리누나. 길손이여 어디 한번 그대에게 물어보세, 나의 공이 곽거병과 비교해서 어떠한지.[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霍去病]”라고 하자, 황제 이하 조신(朝臣)들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는 ‘장군경병(將軍競病)’의 고사가 전한다. 《南史 曹景宗傳》

장군경병【將軍競病】상대방의 훌륭한 시문(詩文)에 놀라움을 표현한 말이다. 양(梁) 나라 때 장군 조경종(曹景宗)이 전쟁에 이기고 개선했을 적에 무제(武帝)가 화광전(華光殿)에서 잔치를 베풀고 연구(聯句)를 시험했는데, 가장 험운(險韻)인 경병(競病) 두 글자만 남았을 때 최후로 들어온 조경종이 즉시 붓을 들어 쓰기를 “떠날 적엔 아녀자가 슬퍼하더니 돌아오매 피리 북소리 다투어 울리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묻노니 어찌하면 곽거병과 같아볼까 [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霍去病]”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南史 曹景宗傳》

장군로불용【將軍老不用】존재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서 조정에서 버림받은 몸이라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62세의 나이로 출정(出征)을 자원하였을 때, 너무 늙었다고 여겨 광무제(光武帝)가 허락하지 않자, 말 위에 뛰어 올라타 주위를 돌아보며 용맹을 과시했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장군막하연【將軍幕下蓮】막부(幕府)를 아름답게 일러 연화지(蓮花池)라 하였다.《南史》

장군석【將軍石】한 나라 때 장군 이광(李廣)이 우북평 태수(右北平太守)로 있을 당시 사냥을 나갔다가 우거진 풀 속에 있는 바위를 호랑이로 잘못 알고 활을 쏘아 명중시켜 화살촉이 끝까지 다 박혔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史記 卷一百九 李廣傳》

장귀【將歸】금곡(琴曲)의 이름. 공자(孔子)가 조(趙) 나라의 초빙을 받고 가는 도중에 조 나라의 현인 두명독(竇鳴犢)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기가 쓰이지 못할 줄을 알고 고향인 추향(陬鄕)으로 돌아가서 그를 슬퍼하여 지은 금조(琴操)라 한다.《史記 孔子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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