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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서시【西施】서시는 춘추(春秋) 때 월(越) 나라 미녀의 이름.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서 패한 뒤에, 그의 모신(謀臣) 범려(范蠡)가 서시를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자, 부차가 서시에게 혹하여 관왜궁(館娃宮)을 짓고 갖은 향락을 누리다가 마침내 오 나라는 정사가 어지럽게 되어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부차가 서시를 고소대(姑蘇臺)에 두고는 무척 총애했으므로 미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서자(西子)라고도 한다.

서시【徐市】진(秦) 나라 때의 방사(方士)로 진 시황(秦始皇)을 위하여 동남동녀(童男童女) 5백 명을 데리고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약을 구하려고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서시불환【徐市不還】서시와 안기생(安期生)은 모두 진(秦) 나라 때의 방사(方士). 시황(始皇)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려고 서시를 삼신산(三神山)에 보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며, 사자(使者)를 해중(海中)으로 보내어 안기생을 만나려 하였으나 풍랑을 만나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史記 秦始皇本紀, 列仙傳》

서시빈【西施嚬】월(越)나라 미인(美人) 서시(西施)가 속 아픈 병이 있어서 얼굴을 찡그리니 그의 찡그리는 것도 어여쁘고 아름다웠다 한다.

서시빈목【西施矉目】월(越)나라의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가 눈을 찌푸린 것을 아름답게 본 못난 여자가 그 흉내를 내고 다녀 더욱 싫게 보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 분수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남을 따라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서시옥골【西施玉骨】작약을 취서시(醉西施)라고 하는 데서 온 말. 서시는 춘추(春秋) 때 월(越)의 미인으로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계획에 의하여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쳐져 오궁(吳宮)에 있으면서 온갖 총애를 받았다.

서시유소추【西施有所醜】월(越)나라의 서시(西施)같은 이름난 미인도 추(醜)한 구석이 있다. 현명한 사람이라도 과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서시혼소【徐市魂銷】진 시황(秦始皇) 때, 서시가, 삼신산(三神山)의 불로초(不老草)를 구하여 오겠다고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동해(東海)로 가서 오지 않았음을 말한다. 《史記 秦皇本紀》

서식일지변【棲息一枝邊】뱁새는 깊은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사람이 각각 자기 분수에 만족해야 함을 비유한 말이다. 《莊子 逍遙遊》

서신【書紳】오래 두고 보며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장(子張)이, 공자에게서 명심(銘心)할 교훈을 듣고 자기의 띠[紳]에 그것을 썼는데, 항상 보고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서신도기【棲神道氣】모두 도가(道家)의 술어로서, 서신은 마음을 통일시켜 신(神)이 엉기게 하는 것이고, 도기는 도가의 기풍(氣風)을 말함.

서씨적【徐氏迹】진(秦) 나라의 방사(方士) 서불(徐巿)이 시황(始皇)을 위하여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약을 구하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5백 명을 거느리고 떠나간 채 뒷 소식을 모르는데, 전설에 그가 일본에 가 살았다 한다. 특히 화가산(和歌山 와카야마) 지방에 서불사[徐巿祠]가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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