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닷컴ː시조時調/가요歌謠 등

하늘구경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 정학유(丁學遊) -


머릿노래

  

천지 조판하매 일월성신 비치거다

일월은 도수 있고 성신은 전차 있어

일년 삼백육십일에 제 도수 돌아오매

동지 하지 춘추분은 일행을 추측하고

상현 하현 망회삭은 월륜의 영휴로다

대지상 동서남북, 곳을 따라 틀리기로

북극을 보람하여 원근을 마련하니

이십사 절후를 십이삭에 분별하여

매삭에 두 절후가 일망이 사이로다

춘하추동 내왕하여 자연히 성세하니

요순 같은 착한 임금 역법을 창제하사

천시를 밝혀 내어 만민을 맡기시니

하우씨 오백년은 인월로 세수하고

주나라 팔백년은 자월로 신정이라

당금에 쓰는 역법 하우씨와 한 법이라

한서온량 기후 차례 사시에 맞아드니

공부자의 취하심이 하령을 행하도다

 

정월령

 

정월은 맹춘이라 입춘 우수 절기로다

산중 간학에 빙설은 남았으나

평교 광야에 운물이 변하도다

어와 우리 성상 애민중농 하오시니

간측하신 권농윤음 방곡에 반포하니

슬프다, 농부들아 아무리 무지한들

네 몸 이해 고사하고 성의를 어길소냐

산전수답 상반하여 힘대로 하오리라

일년 흉풍은 측량하지 못하여도

인력이 극진하면 천재는 면하리니

제각각 근면하여 게을리 굴지 마라

 

일년지계 재춘하니 범사를 미리하여

봄에 만일 실시하면 종년 일이 낭패되네

농기를 다스리고 농우를 살펴 먹여

재거름 재워 놓고 한편으로 실어내니

보리밭에 오줌치기 작년보다 힘써 하라

늙은이 근력 없어 힘든 일은 못하여도

낮이면 이엉 엮고 밤이면 새끼 꼬아

때맞게 집 이으면 큰 근심 덜리로다

실과나무 보굿 깎고 가지 사이 돌 끼우기

정조날 미명시에 시험조로 하여 보자

며느리 잊지 말고 소국주 밑하여라.

삼춘 백화시에 화전 일취 하여 보자

상원날 달을 보아 수한을 안다하니

노농의 징험이라 대강은 짐작노니


정초에 세배함은 돈후한 풍속이라

새 의복 떨쳐입고 친척 인리 서로 찾아

남녀노소 아동까지 삼삼오오 다닐 적에

와삭버석 울긋불긋 물색이 번화하다

사내아이 연날리기 계집아이 널뛰기요

윷놀아 내기하니 소년들 놀이로다

사당에 세알하니 병탕에 주과로다

움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선하여 오신채를 부러하랴

보름날 약밥 제도 신라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 삶아 내니 육미와 바꿀소냐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스럼 삭는 생밤이라

먼저 불러 더위팔기 달맞이 횃불 켜기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이월령

  

이월은 중춘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육일 좀생이는 풍흉을 안다하며

스무날 음청으로 대강은 짐작나니

반갑다 봄바람에 의구히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 빛 새로와라

보쟁기 차려 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살진밭 가리어서 춘모를 많이 갈고

목화밭 되어두고 제 때를 기다리소

담뱃모와 잇 심기 이를수록 좋으니라

원림을 장점하니 생리를 겸하도다

일분은 과목이요 이분은 뽕나무라

뿌리를 상치 말고 비오는 날 심으리라


솔가지 꺾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장원도 수축하고 개천도 쳐 올리소

안팎에 쌓인 검불 정쇄히 쓸어 내어

불 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리니

육축은 못다하나 우마계견 기르리라

씨암탉 두세 마리 알 안겨 깨어 보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기록하여 때 맞게 캐어 두소

촌가에 기구 없어 값진 약 쓰올소냐

 

삼월령

  

삼월은 모춘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하여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 새소리 각색이라

당전의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화간의 범나비는 분분히 날고기니

미물도 득시하여 자락함이 사랑홉다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잎 난다

우로에 감창함을 주과로나 펴오리라

농부의 힘든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풍비하여 때맞추어 배불리소

일군의 처자권속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후한 풍속 두곡을 아낄소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나마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약한 싹 세워 낼 제, 어린아이 보호하듯

백곡 중 논농사가 범연하고 못 하리라

포전에 서속이요 산전에 두태로다

들깻모 일찍 붓고 삼농사도 하오리라

좋은 씨 가리어서 그루를 상환하소

보리밭 매어 두고 뭇논을 되어 두소

들농사 하는 틈에 치포를 아니할까

울 밑에 호박이요 처마 밑에 박 심우고

담 근처에 동과 심어 가자하여 올려 보세

무우 배추 아욱 상치 고추 가지 파 마늘을

색색이 분별하여 빈땅 없이 심어 놓고

갯버들 베어다가 개바자 둘러막아

계견을 방비하면 자연히 무성하리

외 밭을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농가의 여름 반찬 이 밖에 또 있는가

뽕 눈을 살펴보니 누에 날 때 되겠구나

어와 부녀들아 잠농을 전심하소

잠실을 쇄소하고 제구를 준비하니

다래끼 칼 도마며 채 광주리 달발이라

각별히 조심하여 냄새를 없이 하소


한식 전후 삼사일에 과목을 접하나니

단행인행 울릉도며 문배찜배 능금 사과

엇접 피접 도마접에 행자접이 잘 사나니

청다대 정릉매는 고사에 접을 붙여

농사를 필한 후에 분에 올려 들여놓고

천한 백옥 설한중에 춘색을 홀로 보니

실용은 아니로되 산중의 취미로다

인간의 요긴한 일 장 담는 정사로다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하소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랒 으아리를

일분은 엮어 팔고 일분은 무쳐 먹세

낙화를 쓸고 앉아 병술을 즐길 적에

산처의 준비함이 가효가 이뿐이라

 

사월령

  

사월이라 맹하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하다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로 울고

보리 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 난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도 방장이라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면화를 많이 갈소 방적의 근본이라

수수 동부 녹두 참깨 부룩을 적게 하고

갈 꺾어 거름할 제, 풀 베어 섞어 하소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 모 내어 보세

농량이 부족하니 환자 타 보태리라


한잠하고 이는 누에 하루도 열두 밥을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어라

뽕따는 아이들아 훗그루 보아하여

고목은 가지 찍고 햇잎은 제쳐 따소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물 없을소냐

이 때를 승시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

도랑 쳐 물길 내고 우루처 개와하여

음우를 방비하면 뒷 근심 더으나니

봄 나이 필무명을 이때에 마전하고

베 모시 형세대로 여름 옷 지어두소

벌통에 새끼 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천만이 일심하여 봉왕을 옹위하니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신분의 깨닫도다


파일날 현등함은 산촌에 불긴하니

느티떡 콩진이는 제때의 별미로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 보세

해 길고 잔풍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수기를 둘러치고 은린 옥척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소냐

 

오월령

  

오월이라 중하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를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빛이 밤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 하오리라

드는 낫 베어다가 단단이 헤쳐 놓고

도리깨 마주서서 짓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하던 집안 졸연히 흥성하다

담석에 남은 곡식 하마 거의 진하리니

중간에 이 곡식이 신구상계 하겠구나

이 곡식 아니려면 여름농사 어찌할꼬

천심을 생각하니 은혜도 망극하다

목동은 놀지  말고 농우를 보살펴라

뜬물에 꼴 먹이고 이슬풀 자로 뜯겨

그루갈이 모심기 제 힘을 빌리로다

보리짚 말리우고 솔가지 많이 쌓아

장마나무 준비하여 임시 걱정 없이하세


잠농을 마칠 때에 사나이 힘을 빌어

누에섶도 하려니와 고치나무 장만하소

고치를 따오리라 청명한 날 가리어서

발 위에 엷게 널고 폭양에 말리우니

쌀고치 무리고치 누른 고치 흰 고치를

색색이 분별하여 일이분 씨로 두고

그나마 켜오리라 자애를 차려놓고

왕채에 올려내니 빙설 같은 실오리라

사랑홉다 자애소리 금슬을 고루는 듯

부녀들 적공들여 이 재미 보는구나

오월오일 단옷날 물색이 생신하다

외밭에 첫물 따니 이슬에 젖었으며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볕에 눈부시다

목맺힌 영계 소리 익힘벌로 자로 운다

향촌의 아녀들아 추천을 말려니와

청홍상 창포비녀 가절을 허송마라

노는 틈에 하올 일이 약쑥이나 베어두소


상천이 지인하사 유연히 작운하니

때맞게 오는 비를 뉘 능히 막을소냐

처음에 부슬부슬 먼지를 적신 후에

밤 들어 오는 소리 패연히 드리운다

관솔불 둘러앉아 내일 일 마련할 제

뒷논은 뉘 심고 앞밭은 뉘가 갈고

도롱이 접사리며 삿갓은 몇 벌인고

모찌기는 자네 하소 논 삶기는 내가 함세

들깨모 담배모는 머슴아이 맡아 내고

가지모 고추모는 아기딸이 하려니와

맨드라미 봉선화는 네 사천 너무 마라

아기어멈 방아찧어 들 바라지 점심하소

보리밭 찬국에 고추장 상치쌈을

식구를 헤아리되 넉넉히 능을 두소

샐 때에 문에 나니 개울에 물 넘는다

메나리 화답하니 격양가가 아니던가

 

유월령

  

유월이라 계하되니 소서 대서 절기로다

대우도 시행하고 더위도 극심하다

초목이 무성하니 파리 모기 모여들고

평지에 물이 괴니 악마구리 소리 난다

봄보리 밀 귀리를 차례로 베어내고

늦은 콩팥 조 기장은 베기 전에 대우들여

지력을 쉬지 말고 극진히 다스리소

젊은이 하는 일이 기음매기 뿐이로다

논밭을 갊아 들어 삼사차 돌려 맬 제

그 중에 면화밭은 인공이 더 드나니

틈틈이 나물밭도 북돋아 매 가꾸소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할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좌차를 정한 후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 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메인 후에

청풍에 취포하니 잠시간 낙이로다

농부야 근심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오조 이삭 청태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일로 보아 짐작하면 양식 걱정 오랠소냐

해진 후 돌아올 제 노래 끝에 웃음이라

애애한 저녁 내는 산촌에 잠겨 있고

월색은 몽롱하여 발길에 비치구나

늙은이 하는 일도 바이야 없을 소냐

이슬 아침 외 따기와 뙤약볕에 보리 널기

그늘 곁에 누역 치기 창문 앞에 노 꼬기라

하다가 고달프면 목침 베고 허리 쉬움

북창풍에 잠이 드니 희황씨 적 백성이라

잠깨어 바라보니 급한 비 지나가고

먼 나무에 쓰르라미 석양을 재촉한다


노파의 하는 일은 여러 가지 못하여도

묵은 솜 들고 앉아 알뜰히 피어내니

장마의 소일이요 낮잠자기 잊었도다

삼복은 속절이요 유두는 가일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가묘에 천신하고 한때 음식 즐겨보세

부녀는 헤피 마라 밀기울 한데 모아

누룩을 드리어라 유두국을 켜느니라

호박나물 가지김치 풋고추 양념하고

옥수수 새 맛으로 일 없는 이 먹여보소

장독을 살펴보아 제 맛을 잃지 말고

맑은 장 따로 모아 익는 족족 떠내어라

비오면 덮어두고 독전을 정히 하소

남북촌 합력하여 삼구덩이 하여 보세

삼대를 베어 묶어 익게 쪄 벗기리라

고운 삼 길삼하고 굵은 삼 바 드리소

농가에 요긴키로 곡식과 같이 치네

산전 메밀 먼저 갈고 포전은 나중 갈소

 

칠월령

  

칠월이라 맹추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은 서류하고 미성은 중천이라

늦더위 있다한들 절서야 속일소냐

비 밑도 가볍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

가지 위의 저 매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

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는고

칠석에 견우 직녀 이별루가 비가 되어

성긴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질 제

아미 같은 초생달은 서천에 걸리거다

슬프다 농부들아 우리 일 거의로다

얼마나 남았으며 어떻게 되다하노

마음을 놓지마소 아직도 멀고머다


골 거두어 김매기 벼 포기에 피 고르기

낫 벼려 두렁 깎기 선산에 벌초하기

거름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넣고

자채논에 새 보기와 오조 밭에 정의아비

밭가에 길도 닦고 복사도 쳐 올리소

살지고 연한 밭에 거름하고 익게 갈아

김장할 무우 배추 남 먼저 심어 놓고

가시 울 진작 막아 허실함이 없게 하소

부녀들도 셈이 있어 앞일을 생각하소

베짱이 우는 소리 자네를 위함이라

저 소리 깨쳐듣고 놀라서 다스리소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하고 의복도 폭쇄하소

명주 오리 어서 뭉쳐 생량전 짜아내소

늙으신네 기쇠하매 환절 때를 근심하여

추량이 가까우니 의복을 유의하소

빨래하여 바래이고 풀먹여 다듬을 제

월하의 방추소리 소리마다 바쁜 마음

실가의 골몰함이 일변은 재미로다

소채 과일 흔할 적에 저축을 생각하여

박 호박 고지 켜고 외 가지 짜게 절여

겨울에 먹어 보소 귀물이 아니 될까

목화밭 자로 살펴 올다래 피었는가

가꾸기도 하려니와 거두기에 달렸느니

 

팔월령

  

팔월이라 중추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북두성 자로 돌아 서천을 가리키니

선선한 조석 기운 추의가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서 들리구나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백곡을 성실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들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일 공생한다

백곡이 이삭 패고 여물들어 고개숙여

서풍에 익은 빛은 황운이 일어난다

백설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다래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볕 명랑하다

안팎 마당 닦아 놓고 발채 망구 장만하소


면화 따는 다래끼에 수수 이삭 콩가지요

나무군 돌아올 제 머루 다래 산과로다

뒷동산 밤 대추는 아이들 세상이라

아람도 말리어라 철대어 쓰게 하소

명주를 끊어 내어 추양에 마전하고

쪽 들이고 잇 들이니 청홍이 색색이라

부모님 연만하니 수의도 유의하고

그나마 마르재어 자녀의 혼수하세

집 위에 굳은 박은 요긴한 기명이라

댑싸리 비를 매어 마당질에 쓰오리라

참깨 들깨 거둔 후에 중오려 타작하고

담뱃줄 녹두 말을 아쉬워 작전하라

장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쾌 젓 조기로 추석 명일 쉬어 보세

신도주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이웃집 나눠 먹세

며느리 말미받아 본집에 근친 갈 제

개 잡아 삶아 건져 떡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웃 반물 치마 장속하고 다시보니

여름 동안 지친 얼굴 소복이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금년 할일 못다하여 명년 계교 하오리라

밀대 베어 더운갈이 모맥을 추경하세

끝끝이 못 익어도 급한 대로 걷고 갈소

인공만 그러할까 천시도 이러하니

반각도 쉴새 없이 마치며 시작느니

 

구월령

  

구월이라 계추되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 왔노

벽공에 우는 소리 찬이슬 재촉는다

만산 풍엽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

구월구일 가절이라 화전 천신하세

절서를 따라가며 추원보본 잊지 마소

물색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

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탯돌이라

무논은 베어 깔고 건답은 베 두드려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 대추벼와 동트기 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는 콩팥 가리

벼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비단차조 이부꾸리 매눈이콩 황부대를

이삭으로 먼저 갈라 후씨를 따로 두소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사람 낫질이라

아이는 소 몰리고 늙은이는 섬 욱이기

이웃집 운력하여 제일하듯 하는 것이

뒷목 추기 짚 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일변으로 면화틀기 씨아 소리 요란하니

틀 차려 기름 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등유도 하려니와 음식도 맛이 나네


밤에는 방아 찧어 밥쌀을 장만할 제

찬 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 점심 하오리라 황계 백주 부족할까

새우젓 계란찌개 상찬으로 차려 놓고

배추국 무나물에 고추잎 장아찌라

큰 가마에 앉힌 밥 태반이나 부족하다

한가을 흔할 적에 과객도 청하나니

한 동네 이웃하여 한 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이 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아무리 다사하나 농우를 보살펴라

조 피대 살을 찌워 제 공을 갚을지라

 

시월령

  

시월은 맹동이라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공을 필하여도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마저 하세

무우 배추 캐어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도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무우 아람 말도 얼잖게 간수하소

방고래 구두질과 바람벽 맥질하기

창호도 발라 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수숫대로 덧울하고 외양간도 떼적치고

깍지동 묶어 세고 과동시 쌓아 두소

우리집 부녀들아 겨울 옷 지었느냐

술빚고 떡 하여라 강신날 가까웠다

꿀 꺾어 단자하고 메밀 앗아 국수 하소

소 잡고 돝 잡으니 음식이 풍비하다


들마당에 차일치고 동네 모아 자리 포진

노소 차례 틀릴세라 남녀 분별 각각하소

삼현 한패 얻어오니 화랑이 줄무지라

북치고 피리부니 여민락이 제법이라

이풍헌 김첨지는 잔말 끝에 취도하고

최권농 강약정은 체괄이 춤을 춘다

잔진지 하올 적에 동장님 상좌하여

잔 받고 하는 말씀 자세히 들어보소

어와 오늘 놀음, 이 놀음이 뉘덕인고

천은도 그지없고 국은도 망극하다

다행히 풍년 만나 기한을 면하도다

향약은 못하여도 동헌이야 없을소냐

효제 충신 대강 알아 도리를 잃지마소


사람의 자식 되어 부모 은혜 모를소냐

자식을 길러 보면 그제야 깨달으리

천신만고 길러내어 남혼 여가 필하오면

제각기 몸만 알아 부모 봉양 잊을소냐

기운이 쇠진하면 바라느니 젊은이라

의복 음식 잠자리를 각별히 살펴드려

행여나 병나실까 밤낮으로 잊지 마소

고까우신 마음으로 걱정을 하실 적에

중중거려 대답말고 화기로 풀어내소

들어온 지어미는 남편의 거동 보아

그대로 본을 뜨니 보는 데 조심하소

형제는 한 기운이 두 몸에 나눴으니

귀중하고 사랑함이 부모의 다음이라

간격없이 한통치고 네것내것 계교 마소

남남끼리 모인 동서 틈나서 하는 말을

귀에 담아 듣지 마소 자연히 귀순하리


행신에 먼저 할 일 공순이 제일이라

내 늙은이 공경할 제 남의 어른 다를소냐

말씀을 조심하여 인사를 잃지 마소

하물며 상하분의 존비가 현격하다

내 도리 극진하면 죄책을 아니 보리

임금의 백성 되어 은덕으로 살아가니

거미 같은 우리 백성 무엇으로 갚아 볼까

일년의 환자 신역 그 무엇 많다 할꼬

한전에 필납함이 분의에 마땅하다

하물며 전답 구실 토지로 분등하니

소출을 생각하면 십일세도 못 되나니

그러나 못 먹으면 재 줄여 탕감하리

이런 일 자세 알면 왕세를 거납하랴


한 동네 몇 홋수에 각성이 거생하여

신의를 아니하면 화복은 어이할꼬

혼인 대사 부조하고 상장 우환 보살피며

수화도적 구원하고 유무상대 서로 하여

남보다 요부한 이 용심 내어 시비 말고

그 중에 환과고독 자별히 구휼하소

제각각 정한 분복 억지로 못하나니

자네를 헤어보아 내 말을 잊지 마소

이대로 하여가면 잡생각 아니 나리

주색잡기 하는 사람 초두부터 그리할까

우연히 그릇 들어 한번하고 두번하면

마음이 방탕하여 그칠 줄 모르나니

자녀들 조심하여 작은 허물 짓지 마소

 

십일월령

  

십일월은 중동이라 대설 동지 절기로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는고

몇 섬은 환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얼마는 제반미요 얼마는 씨앗이며

도지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곗돈 장릿벼를 낱낱이 수쇄하니

엄부렁하던 것이 나머지 바이없다

그러한들 어찌할꼬 농량이나 여투리라

콩길음 우거지로 조반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즐기리라

새 책력 분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할꼬


해 짧아 덧이 없고 밤 길어 지리하다

공채 사채 궁당하니 관사 면임 아니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귀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 놓고 틀고 타서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꺼리니 실가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 없으니 기직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갓 주어 받은 거름 자로 쳐야 모이나니

 

십이월령

  

십이월은 계동이라 소한 대한 절기로다

설중의 봉만들은 해저문 빛이로다

세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고

집안의 여인들은 세시의복 장만할 제

무명 명주 끊어 내어 온갖 무색 들여내니

자주 보라 송화색에 청화 갈매 옥색이라

일변으로 다듬으며 일변으로 지어내니

상자에도 가득하고 횃대에도 걸렸도다

입을 것 그만하고 음식 장만 하오리라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세육은 계를 믿고 북어는 장에 사서

납평날 창애 묻어 잡은 꿩 몇 마린고

아이들 그물쳐서 참새도 지져먹세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률이라

주준에 술 들으니 돌틈에 샘물 소리

앞 뒷집 타병성은 예도 나고 제도 나네

새 등잔 세발심지 장등하여 새울 적에

웃방 봉당 부엌까지 곳곳이 명랑하다

초롱불 오락가락 묵은 세배 하는구나

 

맺는노래 

  

어와 내말 듣소 농업이 어떠한고

종년 근고 한다 하나 그 중에 낙이 있네

위로는 국가 봉용 사계로 제선 봉친

형제 처자 혼상 대사 먹고 입고 쓰는 것이

토지 소출 아니러면 돈지당을 어이할꼬

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인 근본이라

배 부려 선업하고 말 부려 장사하기

전당잡고 빚주기와 장판에 체계놓기

술장사 떡장사며 술막질 가게보기

아직은 흔전하나 한번을 뒤뚝하면

파락호 빚꾸러기 살던 곳 터도 없다


농사는 믿는 것이 내 몸에 달렸으니

절기도 진퇴 있고 연사도 풍흉 있어

수한 풍박 잠시 재앙 없다야 하랴마는

극진히 힘을 들여 가솔이 일심하면

아무리 살년에도 아사는 면하느니

제 시골 제 지키어 소동할 뜻 두지 마소

황천이 지인하사 노하심도 일시로다

자네도 헤어보아 십년을 가령하면

칠분은 풍년이요 삼분은 흉년이라

천만가지 생각 말고 농업을 전심하소

하소정 빈풍시를 성인이 지었느니

이 뜻을 본받아서 대강을 기록하니

이 글을 자세히 보아 힘쓰기를 바라노라


*****

농가월령가의 작자가 光海君(광해군) 때의 高尙顔(고상안)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憲宗(헌종) 때에 정약용의 둘째 아들 丁學遊(정학유)가 지었다는 설이 확실하다. 이 가사의 형식은 월령체로 農學社會(농학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계절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학작품에서도 12개월의 순서에 따라서 진행되는 형식이 있어 온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월령체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나 농가월령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풍월을 읊는 대신 실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을 파고들며 사회적인 반성의 폭로로 방향을 바꾼 양반문학의 일부 진보적인 경향이 월령체를 빌려서 장편의 서사시를 이룬 것이다. 전체 14단락으로 되어 있으며 12달의 12단락 전후에 서사단락(序詞段落)과 결사단락(結詞段落)이 부가된 것이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서사 34구, 정월령 78구, 2월령 54구, 3월령 100구, 4월령 68구, 5월령 94구, 6월령 100구, 7월령 72구, 8월령 76구, 9월령 70구, 10월령 146구, 11월령 52구, 12월령 40구, 결사 48구 등으로서, 전체 1032구이다. 음수율은 3·4조와 4·4조가 주축이다. 농가에서 행해진 행사와 세시풍속은 물론 그 당시 미덕의 세목들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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