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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小華】소화는 이광문(李光文)의 호. 자는 경박(景博)이고 우봉인(牛峯人)으로 벼슬은 이조 판서임. 소화【韶華】아름다운 계절의 경치, 보통 춘광(春光)을 가리키는 시어(詩語)이다. 소황【蘇黃】소는 소동파(蘇東坡), 황은 황산곡(黃山谷)이니 모두 송대(宋代)의 대문장가였다. 소황【蘇黃】송대(宋代)의 문장가인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을 병칭한 말이다. 소황이두【蘇黃李杜】소황은 송 나라의 문학가인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의 병칭(幷稱)이고, 이두는 당 나라의 시인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병칭이다. 소후【昭后】주(周)나라 소왕(昭王). 소흥【昭興】송 철종의 연호, 1094~1097 소흥패【疏興粺】당 나라 때 한료(韓遼)가 건의해서 소흥의 3백 리 제방을 준설하여 조운(漕運)으로 곡식을 운반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크게 혜택을 주었다 한다. 《新唐書 卷五十三》 속건【屬鞬】오른쪽에 활집을 부착한다[右屬橐鞬]의 준말로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 조(條)에 나오는 말이다. 속고각【束高閣】진(晋)나라 유익(庾翼)이 은호(殷浩)를 평하기를, “이 무리들은 난세(亂世)에는 쓸데가 없으니 마땅히 높은 시렁에 묶어서 엎어 두었다가 천하가 태평된 뒤에 천천히 쓸 것이다.” 하였다. 속국【屬國】대마도를 가리킨다. 속국종귀한【屬國終歸漢】한(漢) 나라에 전속국(典屬國)이란 벼슬이 있었는데 외국과의 교제를 맡은 벼슬이다. 무제(武帝)때에 전속국 소무(蘇武)가 흉노(匈奴)에 사자(使者)로 갔다가 억류(抑留) 되어 절개를 굽히지 않고 19년 만에야 마침내 돌아왔다. 속립아【粟粒芽】속립아는 싸라기처럼 생긴 초춘(初春)의 차싹[茶芽]을 말한 것으로, 소식(蘇軾)의 여지탄시(荔支嘆詩)에 “그대는 무이 시냇가의 속립아를 보지 못했나 전정 후채가 서로 농에 담아 진상하였네[君不見武夷溪邊粟粒芽 前丁後蔡相籠加]”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卷三十九》 속모【束茅】사슴을 가리킨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야유사균(野有死麕)에 “숲에는 작은 나무가 있으며 들에는 죽은 사슴이 있구나! 옥 같은 여인에게 흰 띠풀로 싸서 주는구나.”에서 온 말이다. 속목감사【贖木監司】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목면(木棉)만 내면 죄를 속(贖)하여 준 탐오(貪汚)한 감사를 기롱하여 부른 말. 속미도야【粟米陶冶】농자(農者)와 상자(商者)가 서로 교역하는 것을 말함.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편에, “以粟易械器者 不爲厲陶治”라 하였음. 속미초【續尾貂】진(晉) 나라 때 조왕 윤(趙王倫)의 당(黨)이 모두 경상(卿相)이 되어 노졸(奴卒)들까지 작위를 받았으므로, 시중(侍中)ㆍ중상시(中常侍) 등의 관(冠)의 장식으로 쓰는 담비 꼬리가 부족하여 개꼬리로 이어 대신 관을 장식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속백【束帛】숨어 있는 어진 선비를 초빙할 때에 예물로 비단 묶음을 보낸다. 속부족【續鳧足】장자(莊子)는, “오리 다리가 비록 짧으나 이으면 근심이요, 학의 다리는 비록 기나 끊으면 섧다.” 하였다. 이것은 자연(自然)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속서【俗書】왕희지(王羲之) 글씨체를 말한 것. 한유(韓愈)의 석고가(石皷歌) 중에, “왕희지는 속된 글씨로 모양만 부렸지만, 그래도 그 몇 장으로 흰거위와 바꿨다네.[羲之俗書逞姿媚 數紙尙可博白鵝]”하였음. 속서덕협금【屬西德叶金】오행법(五行法)으로 서쪽은 금(金)에 해당하는데 남산은 중국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속성【屬城】민중군(閩中郡)에 속한 현성(縣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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