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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평【君平】정두경(鄭斗卿)의 자(字)이다. 군평【君平】한(漢) 나라 때 사람 엄군평(嚴君平). 이름은 준(遵). 점을 잘 쳐서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하루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언제나 점괘를 빙자하여 사람들에게 충효(忠孝)와 신의(信義)를 가르쳤고 하루 생계가 마련되면 발을 내리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한다. 또한 나이 90이 넘게 살면서 그 지조를 바꾼 일이 없었다 한다. 《漢書 卷72》 군평【君平】한(漢) 나라 엄준(嚴遵)의 자로,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점을 치던 사람인데, 매일 점을 쳐서 하루 먹을 만큼만 벌면 즉시 문을 닫고 들어앉아서 노자(老子)를 읽거나 저술을 하였으며, 관원들과는 교제하지 않았고 종신토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太平御覽 卷509》 군평기세【君平棄世】군평은 한(漢) 나라 때 촉(蜀)의 은사 엄준(嚴遵)을 말함. 군평은 그의 자. 그는 끝내 세상에 나가지 않고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복서(卜筮)를 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노자(老子)를 전공하여 생도들을 가르치고 십여만 언(言)의 노자지귀(老子指歸)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漢書 卷七十二》 군평첨윤【君平詹尹】한(漢) 나라의 엄군평(嚴君平)과 초(楚) 나라의 정첨윤(鄭詹尹)으로, 점을 잘 치는 사람을 말한다. 군후【君侯】원래는 열후(列侯)로서 승상이 된 자를 가리켰는데, 뒤에 와서는 달관(達官) 귀인(貴人)을 뜻하는 말로 되었다. 《陔餘叢考 君侯》 군희욕【群豨浴】비가 올 징조를 뜻함. 돼지는 본디 비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날이 오래도록 비가 오려면 돼지들이 나가서 물을 건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굴가【屈賈】전국 시대 초(楚) 나라 굴원(屈原)과 한(漢) 나라 가의(賈誼)의 병칭이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서도 평생토록 참소와 시기에 시달리며 조정에서 내쫓긴 채 불행한 일생을 보내었다. 이들은 모두 사부(辭賦)의 대가로 알려졌다. 굴굴【淈淈】물이 터져서 콸콸 흐르는 모양 굴기니【淈其泥】진흙물을 흐리게 하다. 굴대부【屈大夫】초(楚)의 굴원(屈原)을 말한 것. 굴묘편시【掘墓鞭屍】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굴문첨【屈問詹】초사(楚辭) 복거(卜居)에, “마음이 번거롭고 생각이 현란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기에 태복(太卜) 정첨윤(鄭簷尹)을 찾아가 보았노라.” 하였음. 굴송【屈宋】전국 시대 초(楚) 나라의 불우했던 시인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 송옥(宋玉)의 병칭으로 모두 사부(詞賦)의 대가이다. 당 나라 두심언(杜審言)이 저의 문장을 자랑하여, “나의 문장은 굴원송옥(宋玉)을 불러다가 아관(衙官)을 삼을 만하다.” 하였다. 굴슬병【屈膝屛】병풍(屛風) 이름. 업중기(鄴中記)에, “石虎作金銀 屈膝屛風 衣以白縑 畵義士仙人禽獸之象”이라는 것과 양간문제(梁簡文帝)의 오서곡(烏棲曲)에, “織成屛風金屈膝”이라는 등이 보임. 굴신제천하【屈臣制天下】신하에게 굽히고 천하를 제패한다. 곧 자기의 의견을 굽혀 아랫사람의 뜻에 따라 더 큰 목적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굴원【屈原】전국 시대 초(楚) 나라 사람으로, 문장가이자 정치가. 이름은 평(平), 별호는 영균(靈均). 저서에는 초사(楚辭)가 유명함. 《史記 屈原傳》 굴원문천천불어【屈原問天天不語】초(楚) 나라 굴원이 천문편(天問篇) 지은 것을 말함. 굴원신구【屈原訊龜】굴원의 작품 속에는 점을 쳐서 물어 보는 대목이 많이 나오는데, 예컨대 이소경(離騷經)의 “영분(靈氛)이라는 점쟁이에게 나의 점을 쳐 보도록 명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다. 굴원침골일【屈原沈汨日】단오날을 말한다. 굴원이 단오날에 멱라강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굴이불신【屈而不信】굽히고는 펴지 아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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