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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호오【好惡】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호오봉【胡五峰】오봉은 송(宋) 나라 학자 호굉(胡宏)의 호.

호우【湖右】호서(湖西). 곧 충청도(忠淸道).

호우호마【呼牛呼馬】장자(莊子) 천도(天道)의 “저번에 자네가 나를 소라고 불렀을 때 내 자신도 소라고 생각했고 나를 말이라 불렀을 때 또한 말이라 생각했다.”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에 대한 남들의 실없는 칭찬이나 비방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원【胡元】원(元) 나라가 이민족(異民族)에게서 일어났으므로 이렇게 부름.

호원감목【胡元監牧】원(元) 나라 때에 제주도를 거마(車馬)를 관장하는 방성(房星)의 분야(分野)라 하여 이 곳에 말의 목장(牧場)을 두고 단사관(斷事官)이나 만호(萬戶)를 두어 목축을 주관했던 데서 온 말이다.

호월【胡越】호(胡)는 북쪽 지방에, 월(越)은 남쪽 지방에 있었으므로 거리가 먼 것을 칭한다. 매우 소원(疏遠)함을 비유한 말이다.

호월고풍【壺月高風】송(宋) 나라 도학자 이동(李侗)의 높은 인격을 말한다. 송사(宋史) 권428에 “등적(鄧迪)이 일찍이 주송(朱松)에게 말하기를 ‘원중(愿中)은 마치 빙호추월(冰壺秋月)과 같아 한 점 티가 없이 맑게 비치니 우리들이 따라갈 수가 없다.’ 하였다.” 하였다.

호위【虎闈】호위는 궁성의 호문(虎門)과 같은 말로, 호문의 좌측에 있던 국자감(國子監)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성균관(成均館)을 말하기도 한다.

호위【虎衛】호위는 왕의 근위병을 가리킨다.

호위문견【胡威問絹】호위는 진(晉) 나라 호질(胡質)의 아들. 그의 아버지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적에 위가 가서 뵙고 돌아오는데, 비단 한 필을 주므로 위가 꿇어 앉아 “아버님께서 청백하신데 어디서 이 비단을 얻으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질이 “이것은 내 봉급에서 남은 것으로 너의 생활에 보태주는 것이다.” 하자, 위가 그제서야 받았다. 《晉書 卷九十》

호유【胡荽】향초 이름

호음【湖陰】조선 시대 문신(文臣)인 정사룡(鄭士龍)의 호이다.

호의【狐疑】의심(疑心)하여 결정(決定)하지 못함 또 그 사람

호의【縞衣】자신의 아내를 겸칭(謙稱)한 말. 시경(詩經) 정풍(鄭風) 출기동문(出其東門)에 “흰 저고리 초록 치마가 그래도 나의 사랑이로다[縞衣綦巾 聊樂我員]” 한 데서 온 말이다.

호자【胡仔】송(宋) 나라 사람. 호는 초계어은(苕溪漁隱).

호자【瓠子】한 무제(漢武帝) 때 이곳에서 황하수가 터졌다고 한다.

호자가【瓠子歌】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지은 노래 이름이다. 무제 때 황하수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복양현(濮陽縣)에 있는 호자(瓠子)의 둑을 터뜨리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를 시켜서 터진 곳을 메우게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에 무제가 사방에 가 봉선(封禪)한 뒤에 친히 이곳으로 와 급인(汲仁)과 곽창(郭昌)으로 하여금 군사 수만 명을 징발하여 메우게 하였는데, 장군(將軍) 이하가 모두 등에 짐을 지고 가 메우면서 기원(淇園)의 대나무를 모두 잘라다가 채워넣어 마침내 공사를 완공하였다. 그러자 무제가 호자가를 짓고는 이곳에다가 선방궁(宣房宮)을 세웠다. 《漢書 卷6 武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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