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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묵수【墨綬】동인묵수(銅印墨綬)의 준말로, 고을 수령이 차는 까만 인끈을 말한다.

묵수【墨守】묵자가 끝까지 성을 지킨다는 말로 자기의 의견 또는 소신을 굽힘이 없이 끝까지 지키는 것. 묵적지수(墨翟之守)의 준말.

묵수동부【墨綬銅符】검은 인끈[墨綬]과 구리 관인[銅符]은 수령의 상징물이다.

묵자견성【墨子堅城】초(楚) 나라가 공수반이 제작한 공성(攻城) 기구를 가지고 송(宋) 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였을 때, 묵자가 초왕(楚王)을 찾아가 자신의 수성(守城) 실력으로 공수반의 공격을 막아 보겠다면서 그 기량을 겨룬 결과, 아홉 차례나 공격을 저지하며 성을 지켜 내자, 초왕이 결국 송 나라 침략의 계획을 취소했다는 고사가 전한다.《世說新語 文學》

묵자비염【墨子悲染】묵자가 물들이는 것을 슬퍼한다는 말로, 사람은 습관에 따라 그 성품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는 뜻의 고사성어.

묵적【墨翟】묵적은 전국 시대 철학자로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다. ☞ 읍사(泣絲)

묵적지수【墨翟之守】묵적의 지킴. 자기의 소신을 철저하게 끝까지 지킴. 또는 융통성이 없음.

묵점【墨點】붉은 먹과 검은 먹. 전하여 붉은 글씨 검정 글씨로 장부에다 수입 지출 따위를 적는 지방관리를 말함.

묵즉서【墨鰂書】저술한 글들을 오랜 후세에까지 전하지 않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오적어(烏賊魚)에서 나오는 묵즙(墨汁)으로 글씨를 써 놓을 경우, 오래지 않아서 묵즙이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리기 때문에 한 말이다.

묵지【墨池】묵지는 모필(毛筆)의 중심 부분을 일컫는 말로, 필주(筆柱) 혹은 승묵(承墨)이라고도 한다.

묵지【墨池】필연(筆硯)을 씻는 못. 문자(文字)를 써 익히는 서가(書家)의 학문을 뜻한다.

묵태씨【墨台氏】복성(複姓)으로 고죽군(孤竹君)의 자손인데 곧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말한다.

묵형【墨刑】주(周) 나라 때 5형(刑)의 하나로 이마에 자자(刺字)하던 형벌.

묵호【墨胡】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때에 우리 나라에 최초로 불교를 가지고 온 묵호자(墨胡子)를 말한다.

묵호자【墨胡子】묵호자라는 중이 선산부(善山府) 도개부곡(道開部曲)에 사는 모례(毛禮)의 집에 이르자, 모례가 굴실(窟室)을 마련하여 그를 받들었는데, 묵호자가 죽은 뒤에는 아도라는 자가 또 모례의 집을 찾아오므로, 모례는 그를 또 묵호자처럼 받들었던바, 아도가 나중에 도리사(桃李寺)를 짓고 거주함으로써 이것이 신라 불법(佛法)의 시초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의하면, 묵호자가 향을 피우고 재를 올려 공주(公主)의 병을 낫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문거【文擧】문거(文擧)는 후한(後漢) 공융(孔融)의 자(字). 공융이 조조(曹操)의 미움을 사 잡혀 들어 갈 때 당시 아홉 살 여덟 살인 두 아들은 태연한 얼굴로 짐짓 탁정(琢釘)놀이를 하고 있었다. 공융이 사자(使者)를 잡고 부탁하기를, “죄가 나에게서 그치고 저 두 애들은 무사하게 할 수 없을까?”하자 그 애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기를, “아버지께서는 엎어진 새집 밑에 성한 알이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했는데 그 후 곧 그들도 붙잡혀 갔었음. 《世說新語 言語》

문거서【文擧書】문거(文擧)는 후한(後漢) 때 북해 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의 자(字)이다. 선비들을 좋아하였고 특히 후진(後進)들의 앞길을 이끌어 주었으므로 한직(閑職)에 물러난 뒤에도 빈객들이 날마다 집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103》

문거서중어【文擧書中語】문거 후한(後漢) 공융(孔融)의 자(字)이다. 그가 친구인 성헌(盛憲)의 구명(救命)을 위해 조조(曹操)에게 보낸 ‘논성효장서(論盛孝章序)’에 “세월이 멈추지 않고 계절이 유수처럼 흘러 어느새 벌써 나이 오십을 맞았는데 …… 이 세상 친구들 거의 모두가 낙엽처럼 지고 오직 남아 있는 것을 회계의 성효장뿐이다.[歲月不居 時節如流 五十之年 忽焉已至 …… 海內知己 零落殆盡 唯有會稽盛孝章尙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보통 이 글을 ‘공융비세서(孔融悲歲序)’라고 부름. 《文選 卷41》

문거숙종주사예【文擧夙從周史裔】공자의 20대손인 공융이 10세 때 천하에 명사로 이름난 하남 윤(河南尹) 이응을 찾아가 자기를 소개할 때 “저의 선군(先君)공자와 당신의 선인(先人) 이노군(李老君 노자)과는 똑같은 도덕과 의리로써 서로 사우(師友)관계를 가졌습니다.”라고 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後漢書 卷七十 孔融傳》

문거증수예형직【文擧曾收禰衡直】한(漢)나라 공융(공융 자(字)는 文擧)이 미형(禰衡)의 재주를 칭찬하고 깊이 사귀었는데, 미형은 곧은 말로 남을 비평하기로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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