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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소랑【蘇娘】진(晉) 나라 사람 사침(謝耽)의 첩인 소자궁(蘇紫藭)을 이르는데, 그가 사침을 사랑하나 가까이 할 길이 없자, 시아(侍兒)를 보내서 사침이 항상 입는 작은 적삼을 빌려다가 낮에는 이것을 속에 입고 밤에는 이것을 덮고 잤더니, 사침이 그 사실을 알고는 시를 부쳐 이르기를 “소랑과 한번 작별한 후 꿈마저 드물었는데 푸른 적삼을 빌려가니 목마름이 위로되누나 만일 그윽한 정을 거듭 펴고자 한다면 응당 사랑의 옷을 지어주기 바란다오[蘇娘一別夢魂稀 來借靑衫慰渴飢 若使閑情重作賦 也應願作謝郞衣]” 했다고 한다.

소랑【蕭郞】당(唐) 나라 때에 남자의 통칭(通稱)이다.

소랑【蕭郞】소씨의 남자. 양 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을 가리키는데, 그는 유교와 도교에 정통하고 불전(佛典)에 매우 탐닉하였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났다.

소랑【蕭郞】양(梁) 나라의 소자운(蕭子雲)을 가리키는데, 초서(草書)와 예서(隷書)에 능하였다. 양 무제(梁武帝)가 절을 짓고서 소자운에게 명하여, 비백체(飛白體)로 소(蕭)자를 크게 쓰게 하였는데, 뒤에 절은 무너졌어도 이 글씨만은 남아 있었다 한다. 《梁書 卷三十五》

소래산【蘇來山】인천(仁川)의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인천의 진산(鎭山)이다.

소량주【小涼州】사조(詞調)의 이름이다.

소려작거【燒廬作炬】임진왜란 때 대가(大駕)가 임진강 나루터에 당도했는데, 밤을 밝힐 불이 없어 인가에다 불을 지르고는 그 불빛을 이용하여 나루를 건넜다.

소련【燒煉】단사(丹砂)를 아홉 번 단련하여 영단(靈丹)을 만드는 것임.

소련【少連】예기(禮記) 잡기 하(雜記下)에 “소련과 대련은 거상을 잘 했는데, …… 동이의 아들이다.[少連大連善居喪 …… 東夷之子也]”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소렴【小帘】’帘’은 주기(酒旗)로서 작은 술집을 말함.

소렴운우【疎簾雲雨】두보의 시에 “楚江巫峽半雲雨 淸簞疏簾看奕棋" 라 하였음.

소령【小令】사체(詞體)의 하나. 58자 이내의 사(詞)를 소령이라 함.

소로【邵老】송(宋)의 소옹(邵雍). 역리(易理)에 정통하고, 자기 사는 집을 안락와(安樂窩), 자호를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고 할 만큼 부귀공명을 초월하여 일생을 유유자적하게 살았음. 《宋史 卷四百二十七》

소로【蕭露】임금으로부터 잔치를 하사받은 것을 이름. 옛날에 제후(諸侯)들이 주(周) 나라에 조회하자, 천자(天子)가 사랑과 은혜로써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며 연주한 악가(樂歌)인 시경(詩經) 소아(小雅) 여소(蓼蕭)에 “기다란 저 쑥에 이슬이 농후하게 떨어졌네[蓼彼蕭斯 零露濃濃]” 한 데서 온 말이다.

소로와【邵老窩】송 나라의 소옹(邵雍)인데, 그는 낙양에 살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기로 유명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강절(康節) 선생이라고 불렀다.

소륵【疏勒】외로운 산성을 가리킨다. 동한(東漢)의 경공(耿恭)이 단약(單弱)한 병사로 소륵성(疏勒城)을 고수하면서 흉노의 수만 군사를 상대로 온갖 고초를 겪는 속에서 수년 동안이나 절의를 지키며 끝내 사명을 완수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19 耿邯列傳 附 耿恭傳》

소릉【少陵】당(唐) 나라 두보(杜甫)의 별호이다. 소릉은 본래 한 선제(漢宣帝) 허후(許后)의 능인데 그 규모가 선제의 능보다 작았기 때문에 소릉이라고 한 것이다. 두보가 일찍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스스로 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불렀다.

소릉【昭陵】당 태종(唐太宗)의 능(陵) 이름임. 태종은 왕희지의 글씨를 좋아하여 평생에 익힌 나머지, 천하에 흩어진 진적을 모두 수집하여 비부(秘府)에 두고서 자기가 죽거든 순장(殉葬)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그래서 난정첩(蘭亭帖)을 포함, 모든 명적이 소릉에 묻히게 되었음.

소릉【昭陵】소릉은 단종(端宗)의 생묘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으로 안산(安山)에 있었는데, 단종이 죽은 뒤 세조(世祖)의 꿈에 나타나 질책하였다 하여 능을 발굴해서 물가에 이장(移葬)하였다.

소릉【少陵】이가환(李家煥)을 가리킨다.

소릉간【少陵看】두보(杜甫)의 소한식주중작시(小寒食舟中作詩)에 “늘그막의 꽃구경은 안개 속에 보는 것 같네[老年花似霧中看]” 한 것을 가리킨다.

소릉남목【少陵楠木】소릉은 두보(杜甫)의 호이고, 남목은 두보의 시 ‘楠木爲風雨所拔歎’에 나오는 나무로 훌륭한 재목감이 비바람에 뽑힌 것을 슬퍼한 것인데, 자신의 신세를 비유하였다.

소릉사【召陵師】제(齊) 나라 군사. 제 환공(齊桓公)이 초(楚)를 정벌하고 군대를 소릉(召陵)에다 임시 주둔시켰었음. 《春秋 僖公 四年》

소릉탄유관【少陵歎儒冠】소릉은 두보(杜甫)의 별호이다. 두보의 시 봉증위좌승장이십이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에 “유관이 대부분 신세를 망치었네.[儒冠多誤身]”라고 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바른 길로 가는 선비를 조정에서 알아주지 않아 일생을 궁하게 사는 것을 탄식하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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