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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서우【瑞羽】봉황의 별칭이다.

서운관【書雲觀】고려 때 천문(天文)을 보던 곳을 서운관(書雲觀)이라 하였는데 조선 세종(世宗)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개칭하였다.

서울【徐울】수도를 이르는 말이다. 서완은 경주(慶州)의 옛 이름인데 경주가 오랜 세월 도읍지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중국에서 수도를 장안(長安)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임.

서원【西原】서원은 서원경(西原京)으로 청주(淸州)의 옛 이름이다.

서원【西園】서원은 한말(漢末)에 조조(曹操)가 업도(鄴都)에 만든 동산 이름으로, 귀공자들이 연회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원【西垣】중서성(中書省)의 이칭(異稱).

서유【徐庾】서능(徐陵)ㆍ유신(庾信). 모두 진(陳) 때 사람으로, 다같이 문사(文辭)에 뛰어나 당시에 서유체(徐庾體)라 불렸다.

서유【書帷】서재(書齋)에 치는 장막을 말한다.

서유【徐孺】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서치(徐穉), 자는 유자(孺子). 태수 진번(陳蕃)이 원래 손님 접대를 않는데 서치만은 찾아오면 특별히 자리 하나를 깔고 대접하다가 그가 가면 곧 그 자리를 걷어 다시 매달아 두었다 한다. 《後漢書 高士傳》

서유잠건개【書帷暫褰開】책 읽고 연구하는 일도 잠시 접어 두었다는 말이다. 한(漢) 나라 동중서(董仲舒)가 강학(講學)을 할 때 항상 휘장을 드리웠으므로 제자들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며, 이런 일을 무려 3년 동안이나 지속하면서 정원에 나와 거닐어 보지도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史記 儒林列傳 董仲舒傳》

서유탑【徐孺榻】서유는 후한 때 서치(徐穉)를 가리키는데 그의 자가 유자(孺子)이므로 서유라 한 것이다. 그 당시 태수(太守)인 진번(陳蕃)이 일반 빈객(賓客)은 접견하지 않고 오직 서치가 올 때에만 걸상[榻]을 내놓았다가 그가 가면 걸상을 매달아 놓았다는 고사이다. 《後漢書 卷五十三 周黃徐姜列傳》

서음【書淫】독서(讀書) 또는 장서(藏書)에 탐미(耽味)하는 벽성(癖性)을 말한다. 또는 정도(正道)가 아닌 서적을 즐겨 읽는 것을 말한다.

서응시졸악【徐凝詩拙惡】육조(六朝) 때에 서응(徐凝)의 폭포(瀑布)시에, “한가닥으로 청산의 빛을 한계지어 깨었다[一修界破靑山色].”는 글귀가 있는데 소동파는 그것을 악시(惡詩)라 하였다.

서이음와【徐摛淫哇】서이는 남조 때 양(梁) 나라 사람으로 자는 사수(士秀). 신기한 문장을 만들었는데 곧 염문체(艶文體)로서 궁체(宮體)라 이름한바, 애정의 시문이 되었으므로 음와라 한 것이다.

서인【西人】당 나라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가 일찍이 사천성(西川省) 봉절현(奉節縣) 양수의 서쪽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서일【西日】서일은 지는 해로서 즉 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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