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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양계【兩戒】당서(唐書) 천문지(天文志)에 “온 천하에 산하(山河)의 형상이 두 경계[兩戒]에 달렸으니, 북쪽 경계는 융적(戎狄)까지 한계를 하였고, 남쪽 경계는 만이(蠻夷)까지 한계를 했다.” 하였다.

양계이간유묘격【兩階已看有苗格】우순(虞舜)이 두 섬돌 사이에서 간우(干羽)를 춤추자 유묘가 감복한 것을 가리킨다. 우순은 순 임금을 말하고, 간우는 방패와 깃털을 들고 춤을 추는 하 나라 무악(舞樂)의 이름이며, 유묘는 남방에 사는 오랑캐의 이름이다. 서경(書經) 우서(虞書)에, “임금이 문교와 덕을 크게 펴고 방패와 새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자 70일 만에 유묘가 감복하였다.” 하였다.

양고주【羊羔酒】미주(美酒)의 이름임. 송(宋) 나라 때 도곡(陶穀)이 당가(堂家)의 미희(美姬)를 얻어 살면서 겨울철에 설수(雪水)로 차를 끓이며 말하기를 “당가에서도 이런 풍미(風味)를 알더냐?”하니, 미희가 대답하기를 “저 추솔한 사람에게 어찌 이런 풍미가 있겠습니까. 다만 화류가(花柳家)에서 노래하며 양고주나 마실 뿐입니다.” 하였다.

양곡【梁鵠】동한(東漢) 때 사람. 자는 맹황(孟皇). 선부상서(選部尙書)를 지냈으며 팔분(八分)을 잘 썼음.

양곡【暘谷】해가 돋는 곳을 말한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희중(羲仲)을 분명(分命)하여 우이(隅夷)에 택(宅)하게 하니 이른바 양곡(暘谷)이다.” 하였고,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는 “해가 양곡(暘谷)에서 나와 함지(咸池)에서 목욕한다.” 하였다.

양곡우연【暘谷虞淵】양곡(暘谷)과 우연(虞淵). 양곡은 전설 속에 나오는 해가 뜨는 곳이며, 우연은 해가 져서 들어가는 곳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해가 뜨는 곳을 양곡이라고 한다.” 하였고, “해가 우연에 도달하는 것을 일러 황혼이라고 한다.” 하였다.

양곡훈【暘谷暈】일출(日出) 직전 혹은 직후의 노을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양곡은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오는 말로, 해가 뜨는 곳을 가리킨다.

양공【梁公】당 나라 무후(武后)가 당실(唐室) 이씨(李氏)를 제거하고 무씨(武氏)의 종묘(宗廟)를 세웠는데 적인걸(狄仁傑)의 무리가 중종(中宗)을 받들어 반정(反正)하여 당실(唐室)을 회복시켰다. 적인걸을 양공(梁公)에 봉하였다.

양공【梁公】양국공(梁國公)에 봉해진 당 나라의 적인걸(狄仁傑)을 가리킨다. 적인걸이 강남 순무사(江南巡撫使)가 되었을 때 오초(吳楚) 지방에 음사(淫祠)가 몹시 많았는데, 1천 7백 곳의 음사를 철거하였다. 《舊唐書 卷89 狄仁傑列傳》

양공【楊公】명 나라 양조(楊照)를 가리킨다. 양조는 가정(嘉靖) 연간에 여러 차례 무공을 세워 요동 총병관(遼東總兵官)이 되어 호적(胡賊)을 막기 위해 축도(築道)를 쌓았다.

양공【羊公】양공은 진 무제(晉武帝)의 신하 양호(羊祜)를 말한다. 양호는 경치가 좋은 현산을 사랑하여 언제나 이 산에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내가 죽어서 혼백(魂魄)이 있으면 응당 이 산에 오를 것이다.” 하였다. 《晉書 卷三十四 羊祜傳》 남조(南朝) 때 송(宋)의 포조(鮑照)는 무학부(舞鶴賦)를 지었는데, 그 부에 “양호의 전신(前身)이 우물 속에 빠져 죽었다.” 하였다.

양공종옥【楊公種玉】양공은 한(漢) 나라 때의 효자인 옹백(雍伯)을 가리킨다. 옹백은 낙양(洛陽) 사람으로 무종산(無終山), 즉 옥전(玉田)에서 살았는데, 어떤 사람이 돌 한 되를 주면서 땅에 심게 하였다. 몇 년 뒤에 서씨(徐氏) 집에 딸이 있어서 옹백이 장가들고자 하였는데, 그 집에서 백옥 한 쌍을 폐백으로 바치라고 하였다. 이에 옹백이 돌을 심었던 밭에 가서 다섯 쌍의 백옥 구슬을 캐서 바치니 서공이 딸을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구름 속에서 용이 내려와 이들 부부를 맞이해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그 후손들이 밭 가운데 비석을 세워 그 일을 기록하였다.

양공천읍인【楊公薦邑人】한 무제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를 읽다가 “짐이 이 부를 지은 사람과 한 시대에 나지 못하였다.”고 아쉬워하자 옆에 있던 양득의(楊得意)가 “그 부는 바로 신의 한 고향 사람 상여가 지었다.”고 대답하니 무제가 흠칫 놀라며 상여를 불러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상림부(上林賦)를 짓도록 하였다. 《史記 司馬相如傳》

양공탄설【羊公炭屑】양공은 양수(羊琇)를 말한다. 진서(晉書) 권39에 “양수는 경헌황후(景獻皇后)의 종제(從弟)로 성품이 매우 사치스러웠는데, 당시 낙양(洛陽)에 숲이 적어 숯이 곡식처럼 귀하였으나 수(琇)는 숯가루를 만들어 이것으로 짐승의 모양을 만들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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