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글닷컴ː명언명구/사전

하늘구경  

 

 

 

 

우【禹】우는 하(夏)의 개국 군주로, 아버지를 이어 홍수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순(舜)을 잇는 천자가 되었다.

우각가【牛角歌】빈궁한 선비가 벼슬을 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에 영척(甯戚)이 소의 뿔을 두드리면서[扣牛角] 노래를 불러 제 환공(齊桓公)의 상경(上卿)이 된 고사가 있다.

우각간전사【牛角看前史】당(唐) 나라 이밀(李密)이 소[牛] 등에 타고 쇠뿔에다 한서(漢書)를 걸어놓고 돌아다니면서도 읽었다 한다. 《唐書 李密傳》

우각상상가【牛角上相歌】춘추(春秋) 때 위(衛) 나라 영척(甯戚)이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다가 제 환공(齊桓公)에게 발탁되어 정승이 된 고사이다.

우각횡경【牛角橫經】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면서도 책을 틈틈이 보는 것을 뜻한다.

우강【禺强】우강은 북해(北海)의 신(神)으로 현명자(玄冥子)라고도 한다. 열자(列子) 탐문(湯問)에 “오산(五山)의 뿌리가 매인 데가 없으므로 이리저리 옮겨다니자 선성(仙聖)이 상제(上帝)에게 하소하니 상제는 우강을 명하여 붙여 있게 하였다.” 한 말이 있다. 전하여 북쪽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강【牛岡】장사 지내기에 좋은 땅을 말한다. 진(晉) 나라 도간(陶侃)이 어려서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 선인(仙人)이 가르쳐 준 대로 소가 졸고 있는 산언덕[牛眠山]에 장사 지낸 뒤로부터 집안이 흥성했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周訪傳》

우강해상삼【禺强海上三】우강이란 신(神)이 바다 위의 세 산을 옮겼다 한다.

우개【羽蓋】깃으로 만든 일산[羽蓋]인데, 한(漢) 나라 승상(丞相) 왕상(王商)이 두 개를 세웠다.

우객【羽客】도사(道士)의 병칭.

우거【牛車】우거는 불교에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도(菩薩道)를 비유한 것이다.

우거【右渠】조선(朝鮮)의 우거왕(右渠王) 때 한 무제(漢武帝)가 침입하여 항쟁하였다.

우격【羽檄】격문(檄文)은 군사상 공문을 말함인데 그 격문에 새의 깃을 꽂으면 급한 공문이라는 표시가 되었으므로 우격(羽檄)이란 말이 생겼다.

우격【羽翮】우격은 새의 날개인데, 전하여 세자(世子)를 보좌할 우익의 뜻으로 쓰인다. 한 고조(漢高祖)가 여후(呂后)가 낳은 태자(太子)를 폐하고 척 부인(戚夫人)이 낳은 여의(如意)로 태자를 바꾸려 할 때 상산 사호(商山四皓)인 동원공(東園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이 여후가 낳은 태자를 끝까지 보호하여 바꾸지 못하게 하니, 한 고조가 척 부인을 위로하여 노래하기를 “홍곡이 높이 날면 대번에 천리를 가는데, 우격이 이미 이루어져서 사해를 횡단하는지라, 사해를 횡단하니 어찌할 수 없도다[鴻鵠高飛 一擧千里 羽翮已就 橫絶四海 橫絶四海 當可奈何].”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이다. 《史記 留侯世家》

우경【耦耕】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밭을 가는 것. 은거(隱居)하여 농사짓는 것을 말하는데,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우경했다.” 하였다.

우경【虞卿】전국(戰國) 때 변사(辯士)로 조 효성왕(趙孝成王)에게 유세하여 상경(上卿)이 되었으나, 뒤에 친구인 위(魏)의 승상 위제(魏齊)를 돕기 위하여 정승의 지위도 버리고 양(梁)으로 도망쳐 온갖 고생을 다해가며 8편의 책을 저술하여 국가의 득실(得失)을 풍자하였는데, 세상에서는 그 책을 우씨춘추(虞氏春秋)라고 한다.

우경대협연쌍벽【虞卿大俠捐雙璧】의협심(義俠心)이 아주 강함을 말한다. 우경(虞卿)은 전국 시대의 유세객(遊說客)인데, 조왕(趙王)은 그를 한 번 만나 보고 매우 좋아하며 황금 1백 일(鎰)과 백벽(白璧) 한 쌍을 주었고, 두 번 만나자 상경(上卿)으로 삼았고, 세 번 만나자 정승으로 삼고 만호후(萬戶侯)로 봉했다. 이때 위제(魏齊)가 진(秦) 나라 범수(范睢)에게 죄를 얻고 피신하여 조(趙) 나라에 숨어 있는데, 진왕(秦王)이 범수를 위하여 조왕에게 위제를 잡아 보내라고 독촉하므로 위제가 우경에게 찾아가 구해달라고 애원하자, 우경은 백벽과 정승자리를 내던지고 위제와 함께 도망하였다. 《史記 卷七十六 虞卿傳, 卷七十九 范睢傳》

우경송위제【虞卿送魏齊】자신의 일처럼 마음속 깊이 안타까워하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위(魏) 나라의 정승 위제(魏齊)가 진(秦) 나라 정승이 된 범수(范睢)와의 악연(惡緣) 때문에 궁지에 몰려 조(趙) 나라에 왔을 때, 당시 정승으로 있던 우경(虞卿)이 그의 딱한 처지를 불쌍하게 여긴 나머지 인끈을 풀어놓고 함께 도망쳐 신릉군(信陵君)을 찾아갔던 고사가 있다. 《史記 范睢列傳》

우경쌍벽【虞卿雙璧】우경은 전국 시대에 유세(游說)하던 사람으로서 조 효성왕(趙孝成王)을 설득하여 대번에 황금 백일(黃金百鎰)과 백벽 일쌍(白璧一雙)을 하사받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七十六》

우경저술위궁수【虞卿著述爲窮愁】전국 시대 우경(虞卿)이 양(梁) 나라에서 곤경에 처해 실의에 빠졌을 때 국가의 득실을 논한 이른바 우씨춘추(虞氏春秋) 8편을 저술하였는데, 이에 대해 사마천(司馬遷)이 “우경이 만약 궁수(窮愁)에 처하지 않았다면, 글을 지어 후세에 자기를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평한 말이 있다. 《史記 卷76 虞卿列傳》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한비자 / 육도삼략 / 소서 / 손자병법 / 전국책 / 설원 / 한서 / 고사성어 / 옛글사전

소창유기 / 격언연벽 / 채근담(명) / 채근담(건) / 명심보감(추) / 명심보감(법) / 옛글채집

 

 

www.yetgle.com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