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글닷컴ː명언명구/사전

하늘구경  

 

 

 

 

왕자량【王子良】왕자량은 남제(南齊) 때의 경릉 문선왕(竟陵文宣王) 소자량(蕭子良)을 이르는데, 그가 일찍이 밤에 학사(學士)들을 모아 놓고 시를 지을 때 사운(四韻)의 경우는 촛불 일 촌(一寸)이 탈 동안에 다 짓기로 하여 이것을 규정으로 삼았던 데서 온 말이다. 《南史 卷五十九》

왕자승구령【王子昇緱嶺】주 영왕(周靈王)의 태자인 왕자 교(王子喬)가 신선이 되고 나서 7월 7일에 구씨산(緱氏山) 정상에 학을 타고 날아와 가족들을 만나고 떠난 전설이 있다. 《列仙傳 王子喬》

왕자안【王子安】자안은 초당(初唐)의 문장가인 왕발(王勃)의 자(字). 그는 6세에 이미 글을 지었으며, 초당의 사걸(四傑)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저서에는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이 있음. 《新唐書 文藝傳ㆍ四庫全書總目提要》

왕자유【王子猷】자유는 동진(東晉) 때 고사(高士)인 왕휘지(王徽之)의 자이다. 왕휘지는 그가 사는 곳마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어찌 하루인들 차군(此君)이 없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왕자응림오류가【王子應臨五柳家】왕자(王子)는 즉 진(晉) 나라 때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 오류 선생은 도연명(陶淵明)의 호. 왕홍이 도연명을 알고 싶었으나 만날 길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여산(廬山)에 온다는 말을 듣고 술을 준비하여 중도인 율리(栗里)로 나가 만났다는 고사이다. 《南史 卷七十五 陶潛傳》

왕자지출적【王子之出迪】왕자는 미자(微子)를 말한다. 서경(書經) 미자(微子)에서 기자가 미자에게 말하기를 “우리나라에 지금 재앙이 닥쳐오고 있는데 나는 그 화를 받을 작정이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도 남의 신하 노릇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왕자는 어서 떠나라. 그것이 도에 합치된다.”고 하였다.

왕자진【王子晉】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晋). 피리[笙]를 잘 불어 봉의 울음소리를 냄. 뒤에 후령(緱嶺)에서 신선이 되어 백학(白鶴)을 타고 갔다 함. 《列仙傳》

왕저【枉陼】지금의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왕수(枉水)의 가운데 있는 섬 이름.

왕적향【王績鄕】술에 취해 잠든 것을 말한다. 당(唐) 나라 왕적(王績)이 술을 몹시 좋아하여 취향기(醉鄕記)라는 주보(酒譜)를 저술하였다. 후세에서는 이를 인하여 ‘취향(醉鄕)’이란 의미로 쓰게 되었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王績》

왕전사벌초【王翦辭伐楚】자신 없는 일은 착수하지 않음. 왕전(王翦)은 전국(戰國)시대의 이름난 장수로서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조(趙)ㆍ연(燕)등의 나라를 평정하고 초(楚)를 치기 위해 다시 회의를 했는데, 이때 이신(李信)은 병력 20만을 요청한 데 반해 왕전은 60만 병력이 아니면 정벌에 나갈 수 없다고 하여, 처음에 이신을 시켰다가 패하고 나서 다시 왕전을 기용하여 초를 평정하였음. 《史記 卷七十三》

왕절신【王節信】후한(後漢) 때 자(字)가 절신(節信)인 왕부(王符)가 당시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며 세상을 개탄하는 잠부론(潛夫論) 30여 편을 지었다.

왕정【王程】왕사(王事)를 위해 분주하는 여정(旅程)을 말한다.

왕정【王鄭】왕흡(王洽)과 정건(鄭虔). 모두 당(唐) 나라 사람으로 그림과 시문(詩文)에 이름이 높았다.

왕존애관【王尊愛官】한(漢) 나라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험준하기로 유명한 구절판(九折阪)을 넘어다니게 되자 부모님이 주신 몸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돌아왔는데, 그 뒤에 왕존이 자사가 되어 구절판을 넘을 때에는 마부에게 빨리 말을 몰라고 다그치며 “왕양은 효자이지만 왕존은 충신이다.[王陽爲孝子 王尊爲忠臣]”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漢書 王尊傳》

왕존질어【王尊叱馭】한(漢) 나라 때 왕양(王陽)이 일찍이 익주 자사(益州剌史)가 되어 관할 지방을 순행하다가 공래산(邛郲山) 구절판(九折阪)에 이르렀을 때 탄식하며 말하기를, “선인(先人)의 유체(遺體)를 받들고 어떻게 이런 험한 곳을 자주 다닐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뒤에 왕준(王尊)이 익주 자사가 되어서는 이 곳을 지나면서 아전에게 묻기를, “이 곳이 바로 왕양이 두려워하던 길이 아니냐?”하고는, 그의 마부에게 말을 몰도록 질책하면서 말하기를, “왕양은 효자가 되었으니, 왕준은 충신이 될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왕좌【王佐】제왕(帝王)을 보좌할 사람이라는 말인데, 제갈량(諸葛亮)이 왕좌의 재주를 가지고 처음에 초가집에 누웠다가 뒤에 유현덕(劉玄德)의 간청을 받고 나와서 공을 이루었다.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한비자 / 육도삼략 / 소서 / 손자병법 / 전국책 / 설원 / 한서 / 고사성어 / 옛글사전

소창유기 / 격언연벽 / 채근담(명) / 채근담(건) / 명심보감(추) / 명심보감(법) / 옛글채집

 

 

www.yetgle.com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