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연아【演雅】시를 지을 제 운자(韻字)를 모두 짐승의 뜻이 들은 글자를 넣은 것 연안【燕鴈】서로 헤어져 있다는 뜻이다.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올 적에는 기러기는 이미 북쪽으로 날아가고, 기러기가 날아올 땐 제비는 이미 남쪽으로 날아가서 서로 만나지 못한다. 연안대비【燕雁代飛】제비가 올 때 기러기는 떠난다. 사람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연안상위【燕鴈相違】제비는 봄의 철새이고 기러기는 가을의 철새이므로, 서로 만나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이다. 연안성【延安城】황해도 연백군(延白郡)에 위치한 성. 임진 왜란 때 당시 이조 참의(吏曹參議)이정암(李廷馣)이 왜군과 싸워 대첩(大捷)을 거둔 곳. 연액【煙液】안개 방울. 구름과 비. 연양【蓮洋】청 나라 시인 오문(吳雯)의 호. 연양군【延陽君】이시백(李時白)의 봉호(封號)로, 이귀(李貴)의 아들이다. 연어【軟語】부드럽고 순한 말. 불교 십선(十善)의 하나에 유연어(柔軟語)가 들었다. 유마경(維摩經)에 “말한 바의 계체(誡諦)는 항상 연어를 썼다.[所言誠諦 常以軟語]" 하였다. 연어【鳶魚】소리개와 물고기.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편(旱麓篇)의 “소리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도다[鳶飛戾天 魚躍于淵]" 에서 나온 문자로, 소리개와 물고기가 자득(自得)하는 모양, 또는 임금의 덕화(德化)가 잘 미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중용(中庸)에서는, 도(道)가 행하는 것이 상하(上下) 모두 명백하여 온갖 현상이 도 아닌 것이 없음을 밝히기 위하여 인용되었다. 연어락【鳶魚樂】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닿고 고기는 못에서 뛰논다.[鳶飛戻天 魚躍于淵]"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연연【悁悁】근심하는 모양, 성냄 연연【延延】긴 모양, 많은 모양, 오래된 모양 연연【淵淵】깊고 고요한 모양, 북 치는 소리 연연【沇沇】널리 유행하는 모양, 짐승이 분주히 오가는 모양 연연【嬿嬿】아름다운 모양 연연【娟娟】아름다운 모양, 희미하게 먼 모양, 달빛이 맑고 밝은 모양, 나비가 나는 모양. 두보(杜甫)의 시에 “석뢰(石瀨)에 달이 연연하다.” 하였다. 연연【燕燕】연연(燕燕)은 곧 한쌍의 제비인데 제비는 본디 과실을 먹지 않는 것으로, 당(唐) 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감흥시(感興詩)에 “술동이 앞에 유치시킨 것은 성성의 피이고 장막 위에 안일을 도모한 건 연연의 집이로다[樽前誘得猩猩血 幕上偸安燕燕▣]” 한 데서 온 말이다. 《白樂天集 後集 卷十三》 연연【燕然】연연산(燕然山)의 약칭. 후한(後漢) 영평(永平) 원년(元年)에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를 격파하고 이 산에 올라 비석을 새겨 공을 기록하고 돌아왔다. 지금의 몽고이다. 《後漢書 竇憲傳》 연연【涓涓】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모양 연연【宴宴】편히 쉬는 모양 연연과【燕燕窠】백거이(白居易)의 감흥시(感興詩)에 “술동이 앞에 유치시킨 건 성성의 피이고 장막 위에 안일 도모함은 연연의 집이로다[樽前誘得猩猩血 幕上偸安燕燕窠]” 한 데서 온 말이다. 《白樂天後集 卷十三》 연연륵송【燕然勒頌】한(漢) 나라 두헌(竇憲)이 흉노를 쳐서 공을 이루고, 반고(班固)를 시켜 글을 지어서 연연산(燕然山)의 돌에 새겼다. 연연명【燕然銘】후한(後漢)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의 군대를 크게 격파한 뒤, 연연산에 올라 반고(班固)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하여 기념비를 세우도록 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23》 연연산【燕然山】몽고 지방에 있는 산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의 솜씨로 명(銘)을 지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後漢書 卷二十三 竇憲傳》 연연산【燕然山】오늘날 몽고의 항애산(杭愛山)이다. 후한 화제(後漢和帝) 때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과 집금오(執金吾) 경병(耿秉)이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북선우(北單于)를 공격하여 회계산(會稽山)에서 크게 격파하고 연연산에 공적비를 세우고 돌아왔다. 《後漢書 卷二十七 竇憲傳》 연연산명【燕然山銘】후한 때 장군 두헌(竇憲)이 흉노(匈奴)를 정벌하여 크게 승첩을 거두고 연연산에 이르러 반고(班固)로 하여금 그 공업(功業)을 기술하게 한 것을 이른 말인데, 그 문장 이름은 바로 봉연연산명(封燕然山銘)이다. 《後漢書 卷二十三》 연연산비문【燕然山碑文】북방 오랑캐를 크게 격파하고 기념으로 세우는 비문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와 전투를 벌여, 1만 3천 급(級)을 베고 20여만 명을 포로로 잡는 등 대승을 거둔 뒤, 연연산에 올라 반고(班固)로 하여금 글을 지어 기념비를 세우게 했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23 竇融傳 附 竇憲傳》 연연산석【燕然山石】연산은 몽고 지방에 있는 연연산(燕然山)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의 솜씨로 명(銘)을 지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後漢書 卷二十三 竇憲傳》 연연석【燕然石】후한(後漢)의 두헌(竇憲)이 흉노(匈奴)를 정벌하고 나서 연연산에 올라가 그 공업을 새겨 놓은 비석. 지은이는 반고(班固). 《後漢書 竇憲傳》 연연송【燕然頌】후한(後漢) 때 두헌(竇憲)이 흉노(匈奴)를 정벌하고 연연산에 이르러 비(碑)를 세워서 공업(功業)을 기술할 적에 그를 수행(隨行)했던 반고(班固)가 연연산명(燕然山銘)을 지어 그의 공업을 찬송한 데서 온 말이다. 연연한장명【燕然漢將銘】후한(後漢)의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흉노를 정벌하면서 계락산(稽落山)에서 선우(單于)를 크게 격파하고는 변새(邊塞)에서 3천 리나 떨어진 연연산에 올라가 돌에 공을 새겼다. 《後漢書 卷23 竇融列傳 竇憲》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
|
|
|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
|
|
|
||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