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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영숙【永叔】송방조(宋邦祚)의 자(字)이다.

영숙【永叔】영숙(永叔)은 송(宋)의 으뜸 가는 문장(文章)이었던 구양영숙(歐陽永叔) 즉 구양수(歐陽修)의 자(字)인데, 4세 때 아버지를 잃은 구양수는 집이 너무 가난하여 서책도 지필(紙筆)도 없었으므로 항상 물억새를 꺾어 그것으로 땅바닥에다 그어가며 글을 배웠음. 《宋史 卷三百十九》

영숙추성부【永叔秋聲賦】영숙은 송(宋)의 학자 구양수(歐陽脩)의 자. 가을을 읊은 추성부(秋聲賦)가 유명하다.

영식【令息】남의 아들을 일컬음.

영심통점서【靈心通點犀】당(唐) 이상은(李商隱)의 무제시(無題詩)에 “心有靈犀一點通" 이란 글귀가 있는데 서각(犀角)이 양두(兩頭)를 통했으므로 통서(通犀)라고도 한다. 신주이물지(神州異物志)에는 “서(犀)가 신이(神異)를 지녀 뿔로써 영(靈)을 표하므로 영서라 한다.” 하였음.

영씨【伶氏】황제(黃帝) 시대의 악관(樂官)인 영륜(伶倫)으로, 음악을 창제하였다고 한다.

영아【靈椏】산삼. 삼아오엽(三椏五葉)임.

영아전【營衙前】토관(土官)이나 향리(鄕吏)의 동아리를 포괄한 말.

영악【永樂】명 성조(明聖祖)의 연호.

영안잠귀【永安潛晷】소열(昭烈)이 오(吳) 나라를 치다가 크게 패하여 돌아오다가 백제성(白帝城)의 영안궁(永安宮)에서 죽었다.

영알【永遏】끝내 죽다. 길이 갇히다. 감금되다.

영애【令愛】남의 딸을 일컬음.

영애【榮哀】살아서는 존경하고 죽어서는 애도한다는 것. 논어(論語) 子張에 “살아서는 누구나 존경하고 죽어서는 누구나 애도한다.[其生也榮 其死也哀]" 하였음.

영약수쇠옹【靈藥壽衰翁】중국 남양(南陽)이라는 지방 어느 촌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장수하였는데, 그 동네 우물 위에 국화가 항상 성하여서 그 밑에서 솟아나오는 물을 먹어서 장수한다는 것이었다.

영양【令孃】남의 딸을 일컬음.

영양【永陽】영양은 영천(永川)의 고호이다.

영양괘각무흔【羚羊掛角無痕】영양은 양(羊)과 비슷하면서 약간 큰데, 잘 적에는 뿔을 나무에 걸어, 자던 자리의 흔적을 없애 후환을 방지한다 함. 이 말은 시의 경지가 매우 절묘해서 인위적인 흔적이 보이지 않음을 비유한 것임. 송(宋) 나라 엄우(嚴羽)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 “盛唐諸人 惟在興趣 羚羊掛角 無迹可求 故其妙處 透徹玲瓏 不可湊泊 如空中之音 相中之色 水中之月 鏡中之象 言有盡而意無窮”이라고 보임.

영양괘각처【羚羊掛角處】흔적을 찾을 수 없음을 말함. 영양(羚羊)이 잠을 잘 때 적의 침해를 피하기 위하여 나무에 뿔을 걸고 자는데 나무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함. 전등록(傳燈錄)에 “我若羚羊掛角 汝向什麽處捫摸" 라 하였다.

영어【泠馭】시원하게 타는 물건. 장자(莊子) 소요유(逍遼遊)에 “열자가 바람을 타고 다니니 시원해서 좋았다.[列子御風而行 泠然善也]" 는 대목에서 나온 문자로, 시원스럽게 속세를 떠나 보고 싶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馭’는 ‘御’와 같다.

영염사녀재【詠鹽謝女才】진(晋)나라 사안(謝安)이 눈 오는 날에 집안 자녀(子女)들과 놀면서 시를 읊기를 “흰 눈이 분분(紛紛)하니 무엇과 같으냐.” 하니, 그 조카가, “공중에 소금 흩는 것을 견줄 만하네.” 하였다. 그 질녀 도온(道韞)이, “버들개지 바람에 날라 일어나는 것보다 못하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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