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글닷컴ː명언명구/사전

하늘구경  

 

 

 

 

오란【烏闌】오사란(烏絲闌)의 준말로, 격자(格子)로 묵선(墨線)을 그어 놓은 종이를 말한다.

오량【五緉】배의 돛대 끝에 부착하여 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도구이다.

오량【五兩】뱃사람들이 바람의 세기나 방향 등을 알아보기 위하여 배의 돛대 끝에다가 새 깃털을 매단 것을 말한다.

오로【梧老】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오로【五勞】의서(醫書)에, “사람의 병드는 원인에 오로(五勞)가 있다.” 하였는데, 심로(心勞)ㆍ신로(腎勞) 등 다섯 가지이다.

오로봉【五老峯】오로봉은 강서성(江西省) 성자현(星子縣)에 있는 여산(廬山)의 높은 봉우리인데 붓끝처럼 뾰족하다. 그래서 이백(李白)의 오로봉시(五老峯詩)에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으로 벼루의 먹물을 삼아 푸른 하늘 한 장 종이에 내 뱃속의 시를 쓰련다.[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 하였다. 산 아래에 이백(李白)이 글을 읽던 곳이 있으며, 동남쪽에는 주희(朱熹)가 강학(講學)을 하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있다.

오룡【烏龍】개[犬]의 이름인데 개가 변하여 용(龍)이 되었다는 고사(故事)에서 온 말이다. 《橋簡贅筆》

오류【五柳】동진(東晉) 때 은사 도잠(陶潛)이 문 앞에 오류(五柳)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고,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었다.

오류문【五柳門】도잠(陶潛)은 진(晉)의 고사로 자는 원량(元亮). 일찍이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 자신을 말하였는데 여기에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집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는 스스로 오류선생이라 했다.” 하였다. 《晉書 陶潛傳》

오류비【五柳扉】가난한 선비의 집. 진(晉) 나라 때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팽택 영(彭澤令)을 팽개치고 고향에 돌아와 문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는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면서 시주(詩酒)로 자락(自樂)하였다.

오류선생【五柳先生】도잠(陶潛)이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 자신을 말하였는데, 여기에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며 또한 성명도 모른다. 집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는 인하여 오류선생이라 호(號)하였다.” 하였다.

오륜【五倫】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인륜. 父子有親(부자유친), 君臣有義(군신유의), 夫婦有別(부부유별), 長幼有序(장유유서), 朋友有信(붕우유신). 五倫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는 친애에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 부부 사이에는 서로 침범치 못할 인륜의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 벗의 사이의 도리는 믿음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오릉【五陵】오릉은 장안(長安)에 있는 한제(漢帝)의 능으로 곧 고조(高祖)의 장릉(長陵), 혜제(惠帝)의 안릉(安陵), 경제(景帝)의 양릉(陽陵), 무제(武帝)의 무릉(茂陵), 소제(昭帝)의 평릉(平陵)을 말하는데, 전하여 오릉이 있는 장안(長安)을 가리킨 말로, 예부터 장안에는 호유(豪遊)하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에 늙은 기녀(妓女)가 옛일을 회상하며, “오릉(五陵)의 소년들이 다투어 비단 머리싸개를 주었나니, 한 곡조 마치면 붉은 비단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쌓였다네.”라고 하여, 장안의 부유한 집 자제들의 사치스런 풍류를 묘사하고 있다.

오릉공자【五陵公子】오릉은 한(漢) 나라 다섯 황제(皇帝)의 무덤으로, 곧 장릉(長陵 高帝)ㆍ안릉(安陵 惠帝)ㆍ양릉(陽陵 景帝)ㆍ무릉(茂陵 武帝)ㆍ평릉(平陵 昭帝)인데, 이 무덤이 모두 장안(長安)에 있고 유협(遊俠) 소년들이 여기에 모여 놀았으므로 이들을 오릉공자라 불렀다.

오릉사【於陵士】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고사(高士) 진중자(陳仲子)를 가리킨다. 형 진재(陳載)가 제 나라의 공경(公卿)으로 만종(萬鍾)의 봉록을 받고 있었는데, 이를 의롭지 못하다 여겨 처자와 함께 초(楚) 나라로 옮겨 와 오릉(於陵)에서 살면서 오릉중자(於陵仲子)라고 자칭하였다. 초 나라 왕이 그를 정승으로 삼으려 하자 도망쳐서 남의 정원지기를 하였다. 《高士傳 卷中 陳仲子ㆍ孟子 滕文公下》

오릉유【五陵遊】장안(長安) 북쪽에 한(漢) 나라 다섯 황제의 능[五陵]이 있었는데, 이 부근에 한 나라의 호협한 소년들이 모여 서로들 즐겼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漢書 卷92 原涉傳》

오릉중자【於陵仲子】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진중자(陳仲子)를 말한다. 귀족의 자제로 지나치게 청렴결백하여 자기 형이 받은 녹을 의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 먹지 않으며 자기 어머니가 만든 음식도 먹지 않고, 아내와 함께 오릉현으로 가서 자기는 신을 삼고 아내는 길쌈을 하면서 살아갔다. 《孟子 滕文公下》

 

10/20/30/40/50/60/70/80/90/100/10/20/30/40/50/60/70/80/90

200/10/20/30/40/50/60/70/80/90/300/10/20/30/40/50/60/70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한비자 / 육도삼략 / 소서 / 손자병법 / 전국책 / 설원 / 한서 / 고사성어 / 옛글사전

소창유기 / 격언연벽 / 채근담(명) / 채근담(건) / 명심보감(추) / 명심보감(법) / 옛글채집

 

 

www.yetgle.com

 

 

Copyright (c) 2000 by Ansg All rights reserved

<돌아가자>